이번주 목요일 제주도를 간다.
우리는 새벽에 제주 해변을 러닝하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좋은지, 이야기 하는 우리의 얼굴에는 저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는 러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가족여행으로 제주는 처음이다. 중3 아들은 이제, 드디어, 친구들한테 비행기 타본 경험을 은근히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를 16년 동안 못간 이유. 그건 우리 가족만이 알고 있는 아주 소중한 비밀이다.
아무튼 우리는 제주를 가는 그 주 월요일부터 아파트 놀이터에서 각자의 운동으로 제주러닝을 준비했다.
일단 엄마를 보자면 나름 열심히 뛰고는 있으나 8개월 동안 석사논문에만 매달린 시간이 고스란히 저 무거운 몸짓에 드러났다. 엄마가 놀이터 한바퀴를 뛸 때 딸은 노래를 들으면서 두바퀴째 뛰고 있었는데, 매우 가볍게, 포카리스웨트 광고를 찍으며 머리를 휘날렸다. 살짝살짝 올라가는 배꼽티에 날씬한 허리가 마냥 부러워 엄마는 '아 옛날이여'를 절로 외쳤다.
딸은 첫 제주 여행을 앞두고 눈빛이 많이 돌아왔다. 째려보고 흘려보던 재수없는 눈빛이, 선하고 맑은 눈으로 돌아와 제주 여행의 설렘을 한껏 재잘거렸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에게 와서 가볍게 허그를 했고, 아빠의 허그는 거부하지 않고 있다. 역시 자본주의의 힘은 사춘기 미친호르몬을 이기는 건가. 여행은 다음달 카드값 폭탄 스트레스를 상쇄할만큼 매력적인 이벤트이다.
오늘 사춘기 딸은 기특하게도 자발적으로 엄마, 아빠, 오빠와 남동생을 따라 기분좋게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비가 막 온 직후가 날씨가 굉장히 습해서 짜증버튼이 눌러졌을 법 한데, 그녀는 제주해변을 러닝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지 환하게 웃으며 하늘하늘 뛰었다. 옆에는 오빠가 줄넘기 3단 뛰기를 도전하는 중이다.
큰 아들은 중3이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다. 아니, 우리 몰래 지나가고 있는 건가. 언제 사춘기가 올 것 같냐고 항상 아들에게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픽 웃으며 배고프다고 밥차려 주라 한다. 요즘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줄넘기 2단뛰기, 3단 뛰기를 연습하는 중이라며 가족 앞에서 재주를 한껏 뽐냈다. 논문 쓴다며 집밖을 나가지 않다가 거의 처음으로 아들의 줄넘기 실력을 보았는데, 한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렇게 현란한 줄넘기 재주 한번을 구경 못하고 끝날 뻔 했다니. 물개박수로 화답했다. 아, 막내가 달려온다.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아직은 저학년으로서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형과 아빠랑 놀다가 꼭 한번씩 달려와서 엄마에게 안기고 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막내는 항상 바쁘다. 형이 현란한 3단 줄넘기 기술을 구경하며 몇 번을 따라하다가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으면 아빠가 운동 기구에서 근육운동을 하는 것을 구경한다. 그건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안드는지 괜히 달리고 있는 누나 등을 한 대 때리고 도망간다. 다시 엄마에게 와서 자신이 빌려준 이어폰 성능이 잘 되고 있는지 체크를 한다. 본인 러닝 준비는 언제 시작하실런지, 물어볼 겨를이 없다.
아빠는 여전히 러닝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러닝을 하자고 내려오신 분이 근육 운동에만 매진하고 계신다. 소년원 청소년에 뒤질 수 없다며. 마동석 급 체격을 갖고 있는 소년들이 많다는데 아무튼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남편 어깨는 만주벌판이 되어가고 있다.
이날 밤 우리 가족은 나름의 꿈과 기대로 자기만의 운동을 했다. 땀과 습기로 젖어 끈적였지만 좋은 기분으로 집에 들어왔다. 제주 여행은 한달 전부터 우리 가족을 움직이게 했다. 설레임과 기대로 우리는 그날을 기다린다. 어떤 사람에게 제주여행은 별 거 아닌 일상적인 소소한 여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별 것이고 대단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