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선을 벗어난 곳에서, 비로소 내가 되었다
그 도시는 내 이름을 몰랐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곳에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나로서 머물 수 있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어쩌면 이렇게도 자유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대화는 어색했지만,
그만큼 마음을 덜 썼고,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통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일상 한 가운데에
잠시 끼어든 하루.
이름 모를 식당에서 주문을 망설이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서툰 발음으로 커피를 주문하며,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아, 몰라도 돼. 어색해도 돼."
하는 속삭임이 마음 안쪽에서 울렸다.
그 도시의 하늘은 평범했고,
거리도 특별한 건 없었지만,
그 하루는 이상하게도 내게 더 ‘진짜’ 같았다.
아무 역할도 맡지 않은 나,
이름표 없이 걷는 나,
그게 어쩌면 가장 ‘나다운’ 나였다.
하루 종일 걸었고,
조금은 지쳤지만 기분이 맑았다.
나라는 사람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낯선 도시에 짐을 풀고
그곳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는 건,
타인이 되는 연습 같지만
사실은 가면을 벗는 연습이었다.
익숙한 곳에선 매일 연기를 하며 살았고,
낯선 곳에선 처음으로
내 얼굴로 살아냈다.
이방인의 하루는
잠시 내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루 안에서
무엇보다도,
나로 살아가는 일이
참 따뜻하고 충만하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