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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Jan 20. 2024

너와 나, 그리고 검정치마

우리의 사랑은 검정치마일지도 몰라

  그래, 어쩌면 우리의 시작은 검정치마였을지도 몰라. 닮은 곳이 없어 보이던 우리의 음악 취향 사이에서 검정치마를 발견한 것 말이야. 시작하기도 전부터 끝이 난 이후인 지금까지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에게 너는, 검정치마야.


  혹시 우리 같이 [TEAM BABY] 앨범을 듣던 거, 기억나? 너는 작업실에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고, 그 길이 멀지 않았기에 짧은 앨범 하나를 같이 듣자며 나를 너의 스포티파이 그룹 세션에 초대했어. 내 귀에 네 목소리와 [TEAM BABY]가 같이 들린다니. 내가 좋아하는 너와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듣다니. 어쩌면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걸지도 몰라.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내 최애 앨범은 [THIRSTY]가 되었어. 사랑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거든. 특히 ‘Lester Burnham’은 나의 최애곡 중 하나가 되었고 그 곡 때문에 ‘아메리칸 뷰티’ 영화까지 봤는데 그 덕에 내가 주인공처럼 네 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영화를 보기 전까진 가사 때문에 이 곡을 좋아했는데 사랑에 빠진 것은 나이기에 네 탓을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너를 대입하여 듣지 않으려 해도 잘 안되더라. 내 세상은 계속해서 흔들렸으니까.


  헤어지고 나서는 [TEEN TROUBLES] 앨범만 주구장창 들었어. 마침 계절이 여름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 복층이었던 우리 집 1층에는 시디플레이어가 있었고, 나는 검정치마 전 앨범 CD를 갖고 있던 덕분에 너와 함께 자러 복층에 올라가기 전 가장 긴 [TEEN TROUBLES] 앨범을 틀어놓고 올라가자는 너의 말을 너는 기억할까? 우리는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사랑을 속삭였지. 그 뒤로 헤어진 이후에도, 나뭇잎이 알록달록하게 변할 때까지 이 앨범만 들었어. 이젠 과거로 변해버린 너를 생각하며 듣기엔 최고의 앨범이었거든.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마주친 어느 날, 너는 [201]의 ‘Antifreeze’를 흥얼거렸지. 나는 네가 속삭이던 그 노래의 사랑을, 얼어붙지 않을 우리 둘의 사랑을,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을, 너와 함께하는 꿈을 아직도 꾸곤 해.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내가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 어쩌면 우리의 사랑은 검정치마일지도 몰라.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에게 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검정치마야.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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