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뮬리
김혜련
밤새 복통을 앓으며 뒤척이던 어둠을 깨워
미지근한 물 한잔 권하며
생뚱맞은 질문 한소끔 던져본다
요즘 사는 게 왜 이렇게 쓸쓸하지?
주인님 어둠이라고 다 알겠습니까
사는 게 원래 다 그런 것 아닐까요
가을이라고 해서 어둠이 짙어지는 게 아니듯
가을이라고 해서 쓸쓸함이 더 깊어지는 게 아니죠
그러지 말고 요즘 털쥐꼬리새가 분홍빛 실타래를 풀어
온 세상을 몽환적 동화나라로 만들고 있다는데
거기 한 번 다녀오세요 초대장도 입장료도
없어도 된다고 하니 쓸쓸함에 공연히 지문 찍지 말고
어서 다녀오세요 어둠은 잠시 침대맡에 걸쳐두고
가볍게 깃털처럼 다녀오세요
아침 햇살 한소끔 보글보글 끓여
안주머니에 넣고 신발 뒤꿈치로 휘파람을 불어보세요
살랑살랑 피부결에 스치듯 다가오는 핑크뮬리 손길에
쓸쓸함이 설탕물처럼 녹을 거예요
가을 햇살에 씻어 말린 바삭바삭 반질반질한 향이
저 반도 끝에서 소리 없이 걸어오는 겨울도 따뜻하게 맞이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