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리움이 몽글몽글

by 김혜련

“선생님, 문 좀 열어주세요.”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내가 숨 쉬고 있는 자취방 문을 누군가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담요 밖으로 나와 문을 열었다.

보길도에서 배를 타고 통학을 하는 제자 세영이었다.

“세영아,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선생님께 드릴 게 있어서. 이것…….”

12월의 차가운 대기 속으로 세영이의 하얀 입김이 솜사탕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세영이는 신문지에 둘둘 말은 무엇인가를 수줍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엄마가 오늘 댁에 가실 때 가져가시라고 주셨어요. 아직 덜 말랐는데 선생님이 오늘 가시니까 가져왔어요. 하루만 더 말리면 완전 좋은데 어쩔 수 없죠 뭐…….”

나는 신문지를 열어보았다. 푸른빛을 잔뜩 머금은 반건조 미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도 모습이지만 우선 냄새와 향이 온몸을 에워싸듯 강렬했다. 좁은 자취방 안을 바다냄새로 가득 채웠다.

“선생님, 보기는 그래도 미역국 끓여 드시면 허벌나게 맛있을 거예요. 보길도 예송리 미역하면 전국적으로 알아주거든요. 시중에서 산 미역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징허게 맛있어요.”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23살 밖에 안 된 나로서는 그 선물이 곤혹스러웠다. 우선 이 섬에서 나의 고향집까지 가려면 자그마치 7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배를 2시간 30분 정도 타야하고,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그러다보니 미역이 뿜어내는 강렬한 바다냄새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에게 그것을 주기 위하여 첫 배를 타고 온 제자의 마음과 겨울바람과 싸우며 그것을 손수 채취하여 신문에 싸서 보낸 그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객선 안은 물론 시외버스 안에도 온통 바다냄새로 출렁거렸다. 원래도 바다냄새가 배어 있는 여객선 안에서는 그런대로 참을 만했지만, 대다수 승객이 육지 사람인 시외버스 안에서는 그 냄새가 이만저만 강렬한 게 아니었다.

“와! 이게 도대체 뭔 냄새랑가?”

중년남성으로 보이는 어느 승객의 불평 가득한 목소리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내 얼굴을 지레 붉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이 버스가 얼른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마음만 앞섰다.

중간 중간 승차하는 새로운 승객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 냄새 뭐지?” 하며 버스 안을 살폈다. 그때마다 내 가슴을 콩닥콩닥 멀미가 날 정도로 불편했다.

밤 7시가 되어서야 고향집에 도착하여 불편한 마음부터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유난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딸의 모습을 아니 손녀의 모습을 본 어머니와 할머니가 나의 무거운 가방을 받으며 근심 어린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식전 댓바람부터 보길도에서 제자가 덜 마른 미역을 갖고 왔는데 그게 글쎄 배 안에서 버스 안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겨 눈살을 찌푸리게 해갖고 내가 엄청 힘들었어.”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문제의 그 미역으로 국을 끓여 아침상을 차렸다.

“어메어메, 얼매나 맛있는지 요 나이 묵을 때꺼지 요런 미역은 첨이여. 아칙에 국 끓이면서 살짝 맛보니께 어치께 맛있는지 몇 사발 묵어도 질리지 않겄더라. 미원 한 테기도 안 넣었는디 진짜 맛있어부러.”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할머니가 어머니의 감탄을 듣고 한술 뜨시더니 표정이 확 바뀌었다.

“와따, 진짜 맛있다. 때깔부터 포르스름한 게 머리털 나고 요런 미역은 첨이다. 징허게 맛있다. 오늘은 밥 두 그릇 묵을 수 있겄다.”

할머니의 말씀에 약속이나 한 듯 나머지 식구들이 일제히 미역국을 후루룩거렸다. 진짜 맛있었다. 어머니와 할머니 말씀대로 지금껏 먹어온 미역국과는 차원이 다른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미역국이었다.

여객선 안에서 버스 안에서 노심초사했던 불편한 마음이 정말 눈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어느새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겨울바람을 가르고 한달음에 달려와 세영이 건네준 덜 마른 미역이 생각난다. 감탄을 연발하던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엄마의 홍조 띤 모습과 모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며 치아 몇 개가 빠진 주름진 얼굴로 웃음 지으시던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종류의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 이렇게 소중한 선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덜 마른 미역! 그것은 단순한 미역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고 정성이고 건강이고 그리움일 게다.

그립다. 그때 그 시절이,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바다에서 그것을 채취하던 세영 어머니의 시리지만 따뜻한 손끝이, 그것을 수줍게 건네던 세영이의 미소 띤 얼굴이 그립다.

소박하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이토록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보길도 예송리 덜 마른 미역 같은 선물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첫 산문집 《 그리워하라 》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