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날짜 : 2021. 11. 08. 월
책 :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채식주의자와 페미니즘
이 책을 읽으면서 관능적인 표현들과 흔하지 않은 책 속의 상황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원래 소설이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팩트와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자기 계발서나 자서전 같은 장르를 선호했다. 책은 허구를 다루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틀에 박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을 읽고 소설의 선입견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소설은 상당히 범위가 넓었다.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그 상황에서 해당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하는 부분을 각색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소설을 즐기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것도 매우. 바로 드라마, 영화 그리고 웹툰이다. 이 세 가지는 소설이 원작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아쉬운 부분들을 영상과 그림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 나중에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
이 책은 공공장소에서 누군가에게 편하게 설명하기엔 조심스러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뜻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기도 망설여지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도 내 선입견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작성하기 전에는 책을 읽고 난 후 감정 정리가 힘들었고, 살짝 흥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후기, 서평과 같은 글들을 찾아봤다. 글을 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읽었을 때 나처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섬세함과 관능적인 글에 집중이 되어 긴가민가 했으나 주변 글들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시사점은 2가지로 생각이 된다. 첫째는 다수는 다수와는 다른 소수의 행동에 대해 다수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일반화하고 그 소수는 소외된다. 다른 한 가지는 거시적으로는 인간의 폭력성, 시대적으로는 남아 선호, 가부장적, 남성의 폭력성이 오늘날의 '페미니즘'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의 표현들이 다소 과할 수 있어 남성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의 등장인물 영혜는 어느 날 자신이 꾼 꿈을 통해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 답답함을 많이 느껴 상의 속옷을 입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의 남편과 회사 부부동반 저녁식사가 있었다. 대입을 하자면 그 식사 자리에선 영혜가 소수고 남편을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수다. 다수가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를 보고 채식주의자라고 일반화했다. 그리고 속옷을 입지 않았다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소외된 것이다. 사실 영혜는 채식주의자라서 고기를 안 먹는 것이 아니다. 그냥 꿈을 계기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남편이 숨기고 다수의 입맛에 맞게 설명했다. 아내의 꿈 이야기가 그들에게 있어 이상하게 생각될뿐더러 자신에게까지 피해가 올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회문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결혼'은 남녀가 서로 사랑해 희로애락을 같이 겪으면서 힘이 되어주는 좋은 면도 있지만 서로를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도 하셨다. 이 책을 보면서 영혜와 인혜의 남편에게 후자의 그런 면이 있었다. 부부이지만 원하지 않은 관계를 요구하는 그런 내용들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경험해온 폭력성 때문에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을 통해 더 이상 순응하지 않겠다는 표출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많이 안쓰러웠다.
그들은 평등이 아닌 공평을 주장하며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 문장은 저명한 내 친구의 표현을 빌렸다.
책에서는 과하게 표현되었지만 여성에게 있어 사회적 불합리성이 점점 커져 영혜처럼 지금 터졌고, 그게 오늘날 젠더 갈등이 되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혹은 '잠재적 가해자'라고 일반화한다. 그들은 평등이 아닌 공평을 주장하며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을 옳지 못하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가만히 있는 남성들을 전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요즘 남성들도 지난날의 과오를 충분히 인식하고 인정한다. 더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사회가 변하고 있는 중이고 상당히 많이 변했다. 옛날 그 시절 사람들과 대화만 해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이 페미니즘이라는 자체에 있어서 내 생각이 잘못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 좋은 사상과 문화를 후세에 잘 전달 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페미니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올바른 페미니즘으로 인도할 수는 없다. 그들이 겪은 사회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회의 어느 부분이든 양극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중도에 있는 사람들도 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소수든 다수든 다양한 입장들이 있기에 사회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