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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작가의 시야(視野) 2

보다 (김영하, 문학동네)

by 일단써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가면이다. 우리가 학교, 직장, 집, 술자리 등등 각 상황에 맞게 가면이 바뀌며 그에 맞게 행동한다. 나는 '연기하기 가장 어려운 것' 파트를 읽고 아래의 부분에서 페르소나가 생각났다.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나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p123


위문장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며' 이 부분에서 가면이 떠올랐다. 우리가 가진 가면이 실은 내가 부러워했던, 멋져 보였던 타인에 비롯된 자아 혹은 인격이라면 더더욱이 자기 자신을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 사람들의 인격이 융합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작품이 끝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지?' , '이게 내가 맞나?' 하는 괴리에 빠져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를 잃은 상실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어쩌면 나를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나는 나를 정말로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의 미래>

종잇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 판에 책은 왜 더 싸지는 것일까. 스위스 명품 시계 회사 사장의 인터뷰에 힌트가 있다. 당신네 회사 시계는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는 기자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부연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어 서로 경쟁하며 값싸게 생산할 방법을 결국 찾아내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닙니다. 그러니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p162


그런데 비해 책은 필수품이다. 책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저렴해지길 바라고 있다. 완전히 '나'다. 왜 다른 것에 비해 책은 비싸다고 생각했을까? 심지어 사은품 같은 거도 주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은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책을 전혀 안 읽다가 지금은 열심히 읽고 이렇게 글도 쓴다. 한 페이지 글을 하나 쓰는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필요한데 작가들은 오죽할까... 그들의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책값은 저렴한 편이라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건 책이 인기가 없을수록 판매대에서 쫓겨난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책이 나중에 위의 명품시계처럼 더 이상 필수품이 안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상상조차 안 해봤다. 만약 책이 옛날처럼 귀족들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리미티드 에디션같이 비싸게 팔았을 때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반드시 구매할 것이다. 물론 차선책으로 전자책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종잇장을 넘기는 손맛이 있다. 난 이것을 포기 못할 것 같다. 책에 사용된 종이의 종류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거친 혹은 부드러운 감촉은 내가 책을 읽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내가 군 생활 시절 공부, 독서, 글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을 때 공통적으로 나오는 주제가 있었는데 '글은 써봐야 하고 반복해야만 실력이 는다.'라는 내용인데 작가들의 설명과 표현이 각기 달랐는데 그 문장들이 나에게 늘 기대와 설렘을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늘 신기했다. 같은 주제를 다르게 말하는 걸 파악할 수 있게 된 나 자신도.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라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208 -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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