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를 버리다
바꿀수없는 운명의 사슬을 끊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팠고, 화가났고, 그래서 더 절망했으며, 그래서 눈물이 났고 그래서 난 솟아오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어떤 결심을 해 버렸다. 그것이 아마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일로 기억이 난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 버린 소년이 주먹을 쥐고 이런 결심을 해 버린 것이다. 물론 어떤 계기가 있었다. 어린 내 삶에 이처럼 큰 충격을 가져온 사건은 당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어떤 만화때문이었다.
플란다스의 개.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이 개를 버렸다. 넬로와 파트라셰.
이 작가는 넬로의 마지막 혈육이었던 할아버지도 죽였고, 넬로의 그림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게 했고, 어리고 불쌍한 넬로에게 방화범의 누명을 씌우기도하고… 어쩌라는 것인가? 그래도 마지막까지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숨죽여가면서 이 만화영화에 진심이었다. 그만 살아있다면 모든 상황이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도 인정을 받게 되고, 오해를 받던 상황도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런데 아무 힘도 없고 착하고 선한 넬로와 파트라셰를 눈에서 동사시키다니. 그것도 하늘의 은총이 드리워있는 성당마당 앞에서.
뭐 이런
…
난 방구석에서 개처럼 울었다. 넬로가 죽은 것도 열이 받는데, 누구 맘대로... 이미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다 알려졌기 때문에 내 맘대로 이 내용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에 또 울었다. 할수 만 있었다면 난 그 내용을 바꾸었을 것이다.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면 난 사정을 해서라도 이렇게 끝나면 안된다고 강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유럽의 어느 나라 사람이었고, 난 말도 안통하고, 이미 작가가 죽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난 넬로와 주인공을 절대로 죽이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넬로처럼 그렇게 죽지도 않을거야. 파트라셰와 행복한 결말을 이루는 소설 같은 삶을 살거야. 누구맘대로 넬로를 죽이는거야. 물어봤어야지. 살려만 놨으면 넬로와 파트라셰와 여자친구와 행복하게 지내면서 그림을 그릴 기회를 잘 살려주면서 이 소설이 마무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날 난 ‘플란다스의 개’를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난 인어공주도 버렸다.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인어공주의 결말을 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도 내 삶의 기억속에서 지워버렸다. 이렇게 내 삶속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동심이라지만 난 내 삶속에서 일방적으로 슬픔과 절망을 가져다주고 강요하는 예술작품이라든지 그런 환경과 매체에 대해서는 단호함을 보여주었다. 세계적인 명작이라든지, 작가가 노벨상을 탔다든지 이런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처리한 결론에 대해서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난 절대적 운명론자는 될 수 없었고, 미래는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천명이나 숙명까지는 내가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운명까지는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게 되었다. 이것이 플란다스의 개와 인어공주를 죽이고 난 이후의 변화된 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