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미역국 끓이기
생각보다 적은 것들로도 행복해지기
점심에 아내의 생일 겸 몇 분 초청해서 식사자리가 있어서 오늘 아침은 그냥 지나가자고 했지만 나는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난 아내를 위해서 미역국이라도 끓여야겠다는 나름 기특한 생각을 하였다. 어젯밤, 내일 아내 생일을 맞아 점심에 같이 식사할 사람을 늘리는 문제로 약간 신경전을 벌인 후라 조금 서먹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미역국을 끓이려면 무슨 재료가 필요한지를 따져보고, 어떻게 끓이는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를 깨우는 일이었다.
여보, 미역이 어딨지?
소고기는?
결국은 내 일이 아내의 일이 되기 때문에 아내는 내가 무슨 요리라도 할라치면 극구 반대를 하곤 했다. 수년 전 난 나이 들어서 아내와 딸들에게 그래도 인정받는 남편과 아빠가 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요리를 배워야겠다. 특히 이탈리아 음식으로 스파게티나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워서 시간 될 때마다 해주면 환영을 받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결연한 결심을 아내에게 말을 했더니, 그냥 돈 주고 사달라고 해서 그 꿈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기간 중에 난 한 달 기간으로 인천 근처 한 학원에서 진행되는 밑반찬 배우기 저녁시간 코스에 등록을 하여서, 1주일에 3번, 모두 12번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수업에는 9명이 참여했는데, 모두가 4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 베테랑 어머니들이었다. 남자는 나 혼자. 이걸 어쩌나. 이 분들은 이미 한 두 가지 요리사 자격증이 있는 분도 있었고, 또 곧 자격증 시험을 볼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님과 요리의 내공이 비슷한 베테랑 아줌마들과 이제 요리에 입문하는 나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다. 칼 잡는 법, 도마를 씻는 법, 계량컵을 보는 방법 등. 완전히 초보인 나는 손이 늦고 서툰 칼잡이 었다. 그들도 나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업이 절반쯤 지나서 내가 이 고수들의 훈련소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선생님이 수업시간 때 모두가 듣는 중에 말을 해 주었다. 8명이 모여야만 이 수업이 개설될 수 있었는데, 웬 남자사람 하나가 등록을 해 주어서 이 수업이 개설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수업 첫 시간 늦게 여자 사람 한 분이 등록을 했고, 난 오지 말라고 할 명분이 없어서 수업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아내를 위해서 생각한 재료는 미역 소고기 생강 마늘 당근 파 조미료 고추 후추 들기름이었다. 내 요리 철학이랄 것도 없지만 내 스타일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넣는다이다. 아마 양배추가 있었으면 양배추도 목록에 들어갔을 것이다. 아내가 준 한 뭉텅이 미역을 물에 불리고, 냉동실에 있던 한 덩이 소고기를 밖에 내놓고, 난 아내에게 생강이 어딨 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왜 생강이 필요하냐?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파는 어딨 냐고 물었더니 미역이 미끌 미끌하니 미끄러운 파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난 내가 생각하던 재료들이 내 계획에서 빠져나가자 이거 뭐 미역국의 맛이 제대로나 날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미역이 불자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르고, 소고기는 여전히 해동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왜 자기가 어제 소고기를 모두 다 냉동실에 넣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침 남편이 미역국에 도전할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뿐이었다.
난 가스 불위에 중간 정도 크기의 냄비를 올려두고 식용유를 둘렀다. 아내는 왜 거기에 식용유를 붓느냐고 옆에서 잔소리를 했지만 난 믿고 지켜만 보라고 했다. 식용유가 둘러진 판이 데워지자 그 위에 다진 마늘을 넣고 볶다가 이제야 어느 정도 몸을 풀은 소고기를 적당히 잘라서 함께 넣고 볶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내용물이 익어갈 즈음 난 물에 불린 미역을 한 주먹씩 물을 짜서 냄비에 넣어서 가열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난 후에 난 계량컵으로 4인 정도 먹을 수 있는 물을 넣고 끓이면서 국간장과 새우젓으로 간을 하였다.
마지막에 들기름을 찾으러 아내에게 물어보니, 거기에 참기름을 넣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난 긴가민가하지만 요리학원 선생님이 소고기에는 들기름을 넣어야 한다는 격언을 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 뜬금이 없는 얘기이다. 듣기는 했는데, 이유도 모르고 사실인지도 모른다. 아는 체를 했더니 아내는 그래도 되겠네하고 흔쾌히 나의 제안을 수락해 주었다.
미역국의 고소한 향이 거실을 채울 즈음 나는 후추를 툭 툭 털어 넣고 가스불을 끄고 요리를 마무리하였다. 결국 난 생강, 파, 고추, 조미료를 넣지 못하고 뭔가 내 요리 철학과는 맞지 않는 부족한 요리로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아내의 감수하에 진행된 요리의 결과물을 사발에 담아서 찐 고구마랑 아내의 생일상으로 내놓고 난 점수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맛있네.
나도 맛있네.
저녁에 들어온 딸도 맛있네.
내 생각보다 적게 넣어도 맛있는 미역국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삶에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적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2023-11-16, pm 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