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 Jun 07. 2024

가족에게 상처 입은 당신에게.

가장 믿어야 할 가족이 나를 힘들게 할 때는 정말 참지 못할 만큼 괴롭지요. 저는 30년 세월을 ‘아빠’라는 단어를 당당히 내 입에서 꺼내본 일이 없었습니다. 어디 가서 내놓기 부끄러운 자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디 가서 내놓기 부끄러운 아빠를 내 삶에

배정받았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속상했던 일이 너무 많아서 아빠라면 치를 떨며 지내왔어요.


친구 엄마가 우리와 놀지 말라고 했을 때, 아빠가 우리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을 때, 아빠가 내가 몇 학년 아니 몇 살 인지도 몰랐을 때 모든 순간이 다 상처였거든요. 제손으로 아빠를 신고하게 되었을 때 거의 정점을 찍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에 걸쳐 상처의 딱지가 아물기도 전에 같은자리에 또 상처가 덧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6월 지금의 저는 확연히 다릅니다. 여전히 상처 입은 흔적은 있으나 상처를 바라볼 때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다. 이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이제는 "괜찮아요"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알려주고 싶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글이 아프고 상처 입은 누군가의 마음에 치료제로 닿기를 바라면서요.
병원에 갈 만큼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병세가 더 깊어질 것 같을 때는 약국에 갑니다. 이 글이 지나가다 들리는 동네 약국 같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피부에 난 상처가 치료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산소’라고 하더라고요. 의외로 밴드를 붙이고 약을 덕지덕지 발라 상처를 보호하는 게 아닌 거죠.

오히려 밴드로 싸매고 산소를 차단하면 피부는 더 곪거나 썩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산소를 만나야 피부조직은 새로운 조직을 생성하고 깊은 흉터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해요.


산소가 통하게 하려면 상처 부위를 밖으로 내 보여야 합니다. 밖으로 꺼내어 산소를 만나게 해야 해요.


꼭 타인이나 제삼자가 못 본다고 하더라도 그 산소의 역할은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상처부위를 보는 사람이 ‘나’ 자신 이어도 효과는 있었어요. 들여 다 보기 싫을 정도로 흉측해서 보기 싫겠지만 밴드로 꽁꽁 덮어놓은 내 상처를 소독하고 환기하는 과정은 결국 나를 회복시킵니다.  


저의 경우는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숨 쉴 구멍을 만났습니다. 어찌 보면 여과 없이 그대로 내 상처를 적었어요. 작은 보탬과 덜어냄 없이 우리 가족의 멍에를 두 달에 걸쳐 써내려 갔습니다.


우리 집 이야기는 막장드라마 소재로도 쓰이지 못하는 가정사니까 쓰기 전에도 조금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에요. 아무리 막장이라도 정신병자가 등장하진 않거든요.


K-드라마는 불륜, 치정,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 불의의 사고 같은 걸 막장이라고 쓰며 또 이걸로 히트를 치기도 합니다. 보면서 물론 화도 나고 속상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흥미진진한 요소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정신병은 좀 다릅니다. 못 볼 걸 본 것 같은 느낌,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는 느낌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라 잘 다루어지지 않아요.

아직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빠를 보면 제가 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그래도 썼습니다. 혹시나 저처럼 같은 아픔을 가지고 보고 있을 동지들을 위해서요.

가족을 싫다고 말할 수 있고 마음껏 미워할 수 있다고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 세뇌보다 ‘글쓰기’는 효과적이었던 치료 방법이었습니다.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유체이탈 장면에서 영혼이 분리되면서 공기 중에 뜬 영혼이 육신을 쳐다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그런 기분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을 어른의 눈으로 해석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스스로 자존감이 차오르는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고나 할까요.


그리고 쓰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바로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 싶은 부분입니다. 심지어 당시에 겪어내면서 몇 리터의 눈물을 흘리고도 남았을 일들이 많았지만 다시 떠올려 보려고 하니 사건이 흐릿하게 잘 기억이 안나는 걸 보고 자못 놀라기도 했습니다.


미국 최고의 대중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어요. “사람은 비밀의 개수만큼 아프다”

정말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내 안에 아픔을 들키지 않고 꽁꽁 숨기려 할수록 오히려 내면의 아픔은 커져만 갑니다.


저는 이제야 비로소 행복합니다. 어젯밤에 아이들 둘을 껴안고 굿 나이트 인사를 하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묻더라고요.

“엄마가 죽으면 엄마 냄새를 못 맡아서 어떻게 하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장례식장에 동행했던 10살 첫 째는 ‘죽음’이 뭔지 이제 어렴풋이 이해한 건지 저 질문 뒤에 눈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보였습니다. 천진 난만한 둘째는 그럼 엄마 옷을 품고 있으면 된다고. 뭐가 걱정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왜 많고 많은 냄새 중에 엄마냄새가 유독 좋은 걸까?”

아이들이 대답하기 전에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왜냐면 나는 너희들의 안전한 집이거든.”  


“있잖아 너희들이 아주아주 작은 아기 씨앗일 때부터 너희는 내 뱃속에서 엄마의 냄새를 느끼며 안전하게 지냈어. 그런데 어느 날 세상 밖으로 나온 거야. 온갖 냄새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무 이유 없이 엄마냄새를 맡으며 포근함을 느끼는 거야.”


아이들은 이 대답이 무척 맘에 들었나 봅니다. 경쟁하듯 번갈아 가며 작은 두 팔로 저를 꼭 껴안고 <엄마 냄새>를 몇 번이나 킁킁거리고 난 뒤 그제야 잠자리에 들러 갔습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나 자체로 너무 감사하다. 아마 신이 준비해 놓은 그림이 이것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나도 남편도 모두 깔깔 웃을 수 있는 이 드라마가 진짜 내 것일 수 있다니 벅차올랐습니다.


잘 살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알아줍니다. 진짜 '나' 인채로 살아 나가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상처받은 모든 분들도 씩씩하게 삶을 직면해 나갈 수 있는 심지를 굳건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응원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아빠를 신고한 딸의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전 08화 이 또한 여행이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