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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깨달음

자리

데미안의 첫 페이지

by 아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특정한 지위에 다다르면 곧, 자리에 걸맞은 사람으로 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흔히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개인이 변화하는 것을 무마하려는 변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변명을 비웃으며 자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으로도 통용된다. 그렇다면 과연 나도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껏 호의호식할 수 있던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또래 사이에서 적절한 시기와 기회를 잡아 올라왔다. '권태로운 중산층'이 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조용히 사라졌거나, 뒤처지지 않으려는 그들이 눈에 밟히지만, 애써 지나친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우리 집은 망했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듯이, 치명적인 평화로움에 물들었다. 그리고 처참히 부서져갔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았다. 어른들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평화롭게 몰락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고군분투하며 성장했다. 어머니의 성공에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함을 술에 의지했고, 극악무도한 한량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일 가구와 가전들이 부서져갔다.


나에겐 있었어야 할 동생을 지키지 못했음에 어머니께서 눈물을 훔치셨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애써 무시하려 했던 어른의 부재를 다시 상기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 알을 깨고 나오는 시기에 당도하고, 나 자신이 평화를 걷어찰 수 있게 될 즈음 나는 아버지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이해했지만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내 안에서 죽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불효에 울어야만 하는 것일까?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보이지 않던 알을 깨부수고 나오니, 나는 알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무방비했다. 다시 알로 들어가고 싶었다. 녹록지 않은 삶을 비난하며 남들과 같아지려 했다. 이미 알속에 있었음을 모른 채.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는 다시 왼손에는 망치를, 오른손에는 망치를 꺼내 들고 나 자신부터 부수기 시작했다. 더는 알 속을 거부하며 갇힐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부쉈다.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릴 일이지만, 하늘을 날고 싶다. 중력의 힘을 받지 않고서, 세상 위를 날아다니고 싶다. 그때쯤이면 나는 알 속에 있으려나, 알을 품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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