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고 있어
사랑도, 회사도, 삶도 어디쯤 왔는지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월급과 직급과 연인과 부동산으로 가늠해 보는 건
와닿으면서 와닿지 않는 미묘함이 있다.
게임처럼 나의 레벨을 안다면 좋을 텐데,
레벨의 장점은 미래를 기대함에 있다.
지금, 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몇 살쯤 어디서 살고 무엇을 할지를 가늠한다.
진심으로 산 사람들에게는 언덕 위의 그림 같은 집이,
되는대로 산 사람들에게는 골목길의 반지하가 보인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반지하였다.
아침에 해가 뜨면 우리 집까지 비추지 못한다.
신도시라, 태풍이 와도 물에 안 잠기는 것만 좋았다.
옆 집에는 폐지들이 쌓여있어 고양이들이 울었다.
영역다툼 할 때면, 누군가가 창문을 열고 내질렀다.
어떻게든 나의 공간을 지키려고 한 걸까,
어머니는 언젠가 이사 갈 아파트를 말씀하셨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지금도 우리 본가는 반지하다.
때를 너무 놓쳐버렸다.
많은 기회들이 있었지만 놓쳐버리셨다.
언젠가, 그곳을 나오자고 말씀드렸지만 옮기지 않으셨다.
지금도 나의 본가는 반지하에 있다.
가족보다 개인으로 살고 있다.
온전한 개인으로 가족을 만들고 싶다.
이 시점에서 나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고 싶다.
성취한 것들도 잘 모르겠다.
내가 과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싶다.
온전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생각할까
자신이 무엇을 해도 된다고 자란 아이들은 어떨까
그런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중간에 작은 이정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에는 산길에서 비싸게 파는 소매상들이 많다.
더 높이 올라가려면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만드는 이들이,
투박하지만 직접 만든 지도와 이정표를 건네고 싶다.
각자의 길이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걸어왔단다' 하고
'거의 다 왔어요!' 하며 북돋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