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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r 05. 2024

이 부서를 떠나고 싶어요

당신 때문에

10년을 함께한 회사지만,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정당한 평가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할 수는 없더라도, 미친 척 들이받기로 했다. 그리고 미쳐버렸다.


번번이 안타깝고 아쉽다는 말만 하는 관리자에게,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물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도 상위 평가가 없음을 따지니, 하위 평가를 줄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그 말을 돌려보면, 나의 성과와 평가는 동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내포한다. 자연스레 인간은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나의 이성은 돌아왔다. 쌓여왔던 말들을 내뱉었다.




그간 쌓여왔던 것들을 자신에게 푸는 것이냐 묻기에, 쌓여왔기에 풀게 되는 것이라 답했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인지 몰랐다기에, 대체 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인지를 물었고 내지 않을 뿐임을 답했다.


더 이상 면담으로써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12년 전 나의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나의 가족을 재형성하기로 했던 때와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사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잘못이 없음에도 번번이 실패만을 안기는 관리하지 않는 관리자에게 일언반구 하지 않고 떠남은 옳지 못하다.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개운하고 후련하다. 눈치 보이지도, 너무했다 싶지도 않다. 그저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을 뿐,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더 이상 내 인생을 내려치는 작자들에게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기 싫었다. 그러면 안 된다.


사이는 틀어졌고, 절이 싫은 중은 떠나게 될 것이다. 다만, 중요한 건 위치와 자리가 아니다. 내 마음가짐과 생각, 그리고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중이 떠나는 것일까, 절이 떠나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이 시간만 축낸 후에 돌아온다면 나이만을 대접받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 당연한 처우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내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아야지, 삶을 그저 오래 살기만 한 것을 자랑스레 내보이면 안 된다.




더 빨리 떠나지 못함이 몹시 아쉽지만 미안한 일은 아니다. 내 잘못이 없으니.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정작 고개 빳빳이 들고 하던 일을 한다. 피해자만이 상처받는 아이러니를 어찌할까,


왜 이런 순간들만이 나에게 주어지는 걸까, 생각하다 멈췄다. 이런 사람도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이야기와 목소리를 전하여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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