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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Jul 11. 2024

무의식적 의식

집에만 있기에 아깝다고 생각되는 날엔, 책과 텀블러를 들고 근처 카페로 향한다. 정말 좋은 환경의 방이 있음에도 떠나는 이유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잠시 덮어둔다.


카페에 도착하면 충전기가 있는 자리에 앉는다. 없으면 경치가 좋거나 가장 편안한 자리에 짐을 둔다. 벤티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하고 물을 적게. 늘 먹던 메뉴로.


독한 카페인은 늦은 밤까지 잠 못 들게 하겠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 후회하지 않더라도 소박한 욕심을 부려본다.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페이지를 넘긴다. 우상향하던 속도는 오르락내리락하다 집중력이 끊기는 순간에 휴대전화와 텀블러에 꽂힌 빨대로 손이 향한다.


잠시 홀짝이고 연락을 확인하고 다시 책을 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내 입꼬리와 표정은 어색한 자연스러움을 표출한다. 집에서 읽었다면 무표정이었을 텐데,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의식한다.


어렸을 적부터 나로 인해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밝은 표정을 짓곤 했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도 했고, 밝게 지내니 자주 행복해져 좋은 습관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무의식적 의식을 자각한 뒤로는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내 모습에 조금 실망도, 허세 같다고도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을 이용해 페이지를 넘기는 건 좋은 활용이지만, 온전한 집중으로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최근 읽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달아나지 않는 연습]이라는 책에서는 자비의 마음을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 수련법을 알려준다. 그 자비로움을 나 자신에게도 베푸는 건 어떨까 싶다.


의식하지 못한 채 행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나도 지루함을 걷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과시하기 위해 굳이 집 밖으로 나가 책을 읽는다고도, 사치스럽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부분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왠지 나를 조금은 더 이해한 느낌이, 역시 끝없이 탐구하고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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