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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Jul 26. 2024

방어기제 끌어안기

수많은 명상과 책과 씨름한 끝에 선택한 첫 주전공은 심리학이었다.


전공으로 선택하기 전, 유명한 심리학자들의 책을 핥고 씹으며 게워 냈다. 읽히지 않는 책은 나중에 미뤘고, 수준에 맞는 책이라는 오만 속에서 읽히는 글들을 뜨겁게 삼켜냈다.


그중, 사랑을 할 때 상대방의 방어기제가 무척 중요하다는 문장이 마음에 닿았다. 이후로 관계에 있어 상대의 방어기제를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살피며 만났다.




몇 해 전부터 나에 대한 사랑을 가장 깊게 탐미했다. 갑옷처럼 단단한 자존감을 입고, 오만과 편견이라는 썩은 살점을 덜어내고 있다. 이조차도 썩은 생각이 아닐지를 의심하며.


거울에 비친 내 안에는 어떤 방어기제가 있을까, 나는 어떤 것들을 두려워할까. 아버지로부터의 학대, 학교폭력의 악몽, 가족으로부터의 생이별. 나의 등을 끌어안으며 조금씩 극복해 왔다.


상상만으로도 두렵거나, 일단 도망친다. 몸을 숨기고 혹시나 들키지는 않았을지 주변을 살핀다. 의기소침해진 나머지 불안함에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끔찍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그 칼날들을 부러트림에도 남아있는 방어기제는 회피다. 나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의 선두에 나를 세운다. 싫은 일을 가장 먼저 하려 한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며.


그 과정은 몰입이라는 열매로 승화한다. 달콤함은 성취였고, 축배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견딜만하다. 몸의 근육처럼 마음의 근육도 점차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너무나도 두렵고 견디기 어려울 때는 억지로 버티지 않는다. 도망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비겁하다 할 수 있지만,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의 무게를 알고 있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는 건 좋지만, 깊은 관계의 시작을 두려워함이 느껴졌다. 사실, 좀처럼 안 되는 것이기도 하고. 우정과 사랑, 그 어지러운 전쟁터에서 나는 나를 가장 뒤편에 숨기고 있다.


언제까지 숨어 지내야 할까, 갑갑하고 괴롭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냥, 남들이 말하듯 시간이 지나면 어련히 해결될 거로 생각했다.


내 이해받지 못할 취미 중 하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상처를 꾹 누르곤 한다. 언제까지 아파질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보며 그 경계를 알면 덜 두려워진다. 맞기를 기다리는 게, 맞는 것보다 아프듯이.




지금은 그 과정에 있다. 아직 내 고통의 경계를 모르겠다. 그리고 조금씩 단서들이 보인다. 나는 내 불안정한 상태를 두려워하고 있다.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


억지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런 분야는 너무 쉽다. 가면을 쓰고 대중 앞에서 극을 펼치는 그런. 광대의 역할은 너무나도.


그 안에 숨겨진 공허도 두렵기에, 더 준비된 상태를 기다린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며, 끌어안는다. 나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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