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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싫어지는 날-2

by 아론

긴급히 투약이 시작된 덕분에 상태가 빨리 호전되셨다. 어눌하셨던 말씀과 거동도 조금씩 하실 수 있었고, 부축이 필요하지만 간병인이 아닌 보호자만 상주하면 되는 수준으로.


검사 결과들도 다행히 뇌졸중, 중풍, 치매 모두 증상이 보이지 않으나 염증 수치가 높아 잠시 입원하면 될 것 같다.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다행히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손자의 병문안에 주춤주춤 걸어 나오신 할머니는 온몸이 많이 부으셨다. 얼마나 많은 통증을 참으셨을까. 눈물을 애써 참으며 어쭙잖은 너스레라도 떨며 담소를 나눴다. 다행이다, 정말.




밤새 간병한 어머니는 작은 어깨가 더 수척해지셨다. 아픈 사람들로 가득한 병원에서는 젊은 사람들도 힘든데, 환갑에 가까워진 어머니가 팔순에 가까워진, 어머니의 어머니를 부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셨겠지.


식단을 지키셔야 하는 할머니 대신 어머니께서 드실만한 음식들을 가져왔다. 맛있는 빵집에 들러 잘 나가는 비싸고 좋은 음식들과 집안에 쟁여둔 간편 식품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갔다.


고맙다는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고, 머쓱하게 웃으며 날도 추운데 식사 거르지 마시라는 말씀으로 등을 돌리고 병원으로 향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퇴원하면 네 엄마가 쓰러질 것 같다'라며 당신보다 딸을 더 걱정하셨다.




역시 어머니도 할머니 앞에선 소중하고 예쁜 딸인 거겠지. 그런 나도 귀한 아들인 거고.


아직 살만한 삶인가 싶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으련만. 조금씩, 어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누군가 또다시 아프고 떠나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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