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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 사용법

by 아론

늘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 어렸을 적 침대에 누워 괴물을 상상하며 겁에 질리듯이 나는 나의 상상에 잡아 먹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대체 왜, 나는 이런 삶을 살게 된 걸까.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격일로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했던 그는 쉬는 날에는 종일 게임만 하다 밤이 되면 술을 마셨다. 평소에 유쾌하고 밝은 사람으로 보이던 그는 술만 마시면 악마도 넌더리 칠 본성으로 집안을 깨부수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벌어보려 부업을 시작하신 어머니를 음해하는 의처증과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폐를 끼치다 했던 말을 새벽 4시까지 되풀이하는 술버릇. 그리고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욕지거리와 폭력을 어머니께 쏟아 내었다.


아버지 없는 자식 만들지 않겠다 하셨지만, 이런 아버지가 자식에게 필요한지는 물어봤어야 했지 않았을까. 나는 한 달의 절반을 떨며 잠에 들었다. 잠에 들지 못한 채 방문에 기대어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던 날들로 가득했다.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 스티커들을 보며 별이 되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사라지거나 큰 병에 걸린다면 우리 집은 잠시나마 조용해질 수 있을까. 어머니는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일곱 살의 유일한 기억이다.


수 차례 아버지를 피해 도망쳐도 봤지만 의지가 굳건하지 못했을까, 금세 꼬리가 밟혔다. 방학 내내 친척 집에서 머무르기도 했다. 사촌 형과 뛰어놀던 그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게 좋았다.


아니, 사실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런 가정은 온전치 못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을 불러도 그저 순간의 조치만이 있을 뿐, 법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남긴 채 사이렌은 멀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 첫 여행을 떠나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던 날 그는 나를 타깃으로 삼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려 사춘기를 시작했던 나는 '당신이 해준 게 무엇이 있느냐' 물었고 울분을 못 참은 그는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장롱을 쓰러트린 뒤, 귀를 막고 숨죽여 울었다. 경찰을 불렀고 이후에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의 문도 잠겨버렸다. 지나고 보면 경험이고 추억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뿐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우리 가족은 나의 취업으로 조금 숨통이 트였다. 정말 운이 좋아 합격한 회사였고 기쁨을 나누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친척들의 돈 빌려달라는 요구들이었다.


몇십만 원을 빌려주었다. 돈 대신 더 빌려줄 수 있냐는 말만 돌아오기에 연락을 끊었다. 내가 태어나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관계를 이용해 전염병처럼 가난을 옮기는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


20대 중반이 되고 주변을 돌아보니 내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고모뿐. 정말 작고 소박했다. 소박하면 오밀조밀한 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 타버린 장작처럼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비평준화로 고등학교도 시험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경기도 안산시의 제도 속에서, 나는 담임 선생님의 도움만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가족 중에는 어른이 없었다. 나이만 들어버린 아이들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돈을 벌어야 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치에 맞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나만 바라보는 그 시선이 무거웠다. 나는 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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