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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어먹는다는 건

by 아론

자취를 하면서 밥을 직접 짓기로 했다.

햇반도 맛있지만, 끼니마다 먹기에는 부담도 되고,

따뜻한 밥 향기가 방안에 풍겼으면 좋겠는 마음도 들었다.




어렸을 적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면

압력밥솥 소리가 칙칙하며 부엌에서 들려왔다.

눈곱만 뗀 체 밥상에 앉아 따끈한 밥을 들었다.


그때의 추억으로, 본가에서 밥솥을 들고 왔다.

할아버지께 슬쩍 말씀드리니 마실가시는 길에

사다 주셨다고 어머니께서 귀띔해 주셨다.




쌀을 서너 번 씻고 쌀뜨물을 버린다.

버리는 물은 아까우니 설거지거리가 있다면 위에 붓고

손가락이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담는다.


뚜껑에 고무를 끼고 단단히 잠근다.

꼭대기에 달린 공기구멍도 잠그고

강불에 15분, 물방울이 맺힐 즈음 뜸을 충분히 들인다.


너무 오래 두면 타기에 적당히 압력이 빠지면

공기구멍을 열어 압력을 없애고

가장 밑과 위의 밥알들을 뒤섞어준다.


어머니께서 주신 김치와 김가루만 뿌려먹더라도

완벽한 식사가 된다.

남은 밥은 조금씩 소분해서 식힌 뒤 냉동실에 얼려둔다.




먹는 시간이 지나면 정리하는 시간이다.

혼자 자취하며 밥을 짓고 바로 다 먹지는 못하기에

이틀 정도 밥이 머무르면 끈적하고 딱딱한 밥풀이 붙는다.


바로 닦아내고 싶지만, 딱하게 굳은 밥풀들은

밥솥과 정이 들었는지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물을 가득 담아 한나절의 시간을 둔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떨어질 즈음이 된 걸까.

서서히 물러진 밥풀들은 조금씩 분해되고 떨어진다.

철수세미로 하면 코팅이 벗겨지니 부드러운 수세미로 밀어낸다.




다 끝났다고 방심할 때, 종종 밥을 짓는 과정을 떠올린다.

먹는 것까지가 아닌 씻고 말리는 과정까지 다하는 하듯이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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