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도 없이 극도로 불안에 빠지는 장애 현상. 이 증상의 환자는 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공황 장애.
사전적 의미로는 위와 같지만, 텍스트로 닿는 감정과
진단명으로 의사의 입에서 듣는 건 무게가 달랐다.
진료를 이어갈수록 나에 대해 알아가고, 그럴수록
모르던 나의 모습에 대해 알아가는 게 늘 새롭다.
막, 엄청 신기하기보다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도로.
내가 공황을 겪는다는 건 최근에 알았지만
증상을 처음 느낀 건 비교적 오래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보습학원에 다니던 때다.
학원비가 8만 원에서 12만 원 사이에, 국영수사과를
전부, 게다가 논술과 야자까지 시켜주는 학원은
가성비를 요하던 우리 형편에 걸맞았다.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적이 올라갔고
40명 중 30등 정도에서 10등 이내로 성적이 올랐다.
하지만 교육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며
초등학교 때는 사고보다는 암기로 충분했다.
하지만 중학교부터는 사고력이 필요했다.
난 문제를 여러 방향에서 보는 걸 좋아했다.
지금은 끈기 있게 문제 해결의 키를 찾는 능력이지만,
그때는 선생님들의 눈총을 자주 받곤 했다.
정해진 공식보다는 나만의 방법과 규칙을 찾곤 했다.
선생님이 물으면 규칙을 설명했고, 혼났다.
그래서 더 빠르게 풀고 나만의 방법과 비교도 했었다.
게다가 과목도 많아지고 암기량이 늘어나며 책상에
붙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급격히 증가했다.
내가 통제하는 것이 아닌 통제당하는 시간이 증가했다.
이 상황에서 종종 학원에서 식은땀을 흘리거나
급격히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불안을 느끼는 시간이
있곤 했다. 선생님들은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다 여겼고.
아마 가정환경도 한몫했으리라.
집에서도 아버지의 술주정이 집을 떠나고 싶게 했다.
어디에도 나의 휴식처는 없었다.
삶을 이어오며 증상은 잦거나 작아졌다.
회사에서 일할 때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혹은 너무 어려운 시험을 준비할 때 찾아오곤 했다.
최근에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오며 수영을 했는데,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잠수와 가까운 해변에서 물장구만 쳤다.
그러다 한계지점까지 잠수를 해보고 싶었고
침잠된 물속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끓어오르는 숨을 겨우 내 쉬고 휴식을 취했다.
30대에 이르러, 나는 이 공황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당연히 불안은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
이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이겨낼 만한 취미와 도전
이를테면 수영 같은 취미가 새롭게 이어지지 않을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걱정보다 감도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