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JR센모 본선 여행-(8)기타하마역에서 아바시리역까지

오호츠크해를 보며 달려간다.

by 늘 담담하게

해마다 홋카이도의 겨울이 시작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는데 눈이 가득 쌓인 풍경 외에, 외롭게 서 있는 기차역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오호츠크해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기타하마역北浜駅이다. 원생화원역을 출발하면 다음 역은 이미 한번 소개한 바 있는 기타하마역이다.


2005년에 처음 북해도로 여행을 시작했을 때, 이 역에 대한 정보는 센모본선이라는 노선의 한 역이라는 것, 무인역이고, 석양이 아름다운 역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홋카이도 여행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그때는 네이버에서 홋카이도의 정보는 거의 없고, 가이드북이라고 해봤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들 혹은 일본책을 그대로 번역한 모 출판사 가이드북, 그게 전부였다. 일본 철도에 대한 기본정보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 삿포로가 아닌 아바시리 부근의 기타하마역을 찾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기타하마역은 1924년 일본 국유철도의 역으로 개업을 했다. 지금이야 바닷가의 무인역이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역이다. 기타하마역에 대해서 예전에 나는 이렇게 썼다.


"아바시리에서 구시로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을 보통 센모본선이라고 하는데, 기타하마역은 아바시리에서 출발하면 네 번째입니다. 아바시리에서 시레토코샤리까지의 철도노선은 바닷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요, 이 기타하마역은 그 바닷가에 외로이 홀로 서 있는 역입니다. 전체적으로 목조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2년 현재 이곳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입니다. 철도역이라는 게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무인역은 아니었겠지요. 기타하마역도 처음에는 유인역이었습니다. 기타하마역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24년이었습니다. 센모본선의 역들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역이었는데, 역이 들어섰다는 것은 그나마 열차를 타는 사람도, 화물도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렇게 기타하마역은, 전성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일본도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농어촌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고 그렇게 기타하마 주변의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승객과 화물량도 같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역이 들어선 지 60년이 지난 1984년에, 적자에 시달리던 당시 일본 국철은 기타하마역을 무인역으로 바꿔버리는 조치를 취합니다. 유인역에서 무인역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그 역의 생명은 사라져 버리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후지에라는 사람이 무인역으로 바뀐 지 2년 후인 1986년에 역사 안에 정차장이라는 카페를 개설합니다. 현재까지 이 카페는 계속 영업을 하고 있고, 외로운 무인역 기타하마역을 찾아오는 내외국인들이 계속 있어, 아바시리시도, JR 홋카이도에서도 이 역을 관광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겨울 기타하마역에는 기존 보통열차만 정차하는 게 아니라, 겨울철 이벤트 열차인 유빙 노롯코열차가 이 역에 잠시 정차해서 승객들에게 오호츠크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거나, 역사 안의 대합실에 자기만의 사연을 적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습니다."


이 외로운 역을 처음 찾아간 것은 2006년 여름이었다. 시레토코샤리에서 출발해서 원생화원역을 거쳐 해가 질 무렵에 이 역에 도착했다. 나와 함께 한량짜리 보통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일본인 세명, 친구 사이인듯한 두 사람은 대학생 같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초로의 신사였다. 이 역이 유명해진 것은 오호츠크해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해안가까지는 20m 정도 안된다는 것도 있지만 이 역이 가지는 외로운 이미지,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그 느낌이었을 것이다.

역구내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오호츠크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겨울시즌 유빙이 몰려드는 시기에 이곳을 가면 해안가로 밀려온 유빙을 볼 수 있다. 역 자체가 해안에서 20m밖에 떨어지지 않아 오호츠크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역 안에는 1986년부터 영업을 해온 정거장이라는 카페가 있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기 전의 대합실은 이렇게 온통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남기고 간 메모들과 명함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이렇게 역사 안이 메모지로 가득 쌓이게 된 것은 유인역 시절인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9대 기타하마역장이었던 기무라 시게루가 대합실에 낙서장을 놓아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명함을 남기고 가고, 어떤 이는 불합격 통지서, 그리고 항공권, 편지등이 남겨져 있다.

각각의 애틋한 사연들이 그렇게 메모지에 붙어 있었지만 새로 찾아온 사람들이 남긴 메모들이 그 위에 쌓여서 결국은 잊혀 간다. 기타하마역에 오면 왜 그렇게들 뭔가 남기려 하는 걸까?

카페 정거장의 내부의 모습이다. 좌석들은 옛 객차에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처음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함께 내렸던 이들이 모두 창가 좌석에 앉았다.

처음 내가 갔을 때 함께 내렸던 이들이 창가 좌석에 앉은 모습이다. 저 초로의 신사분은 수첩에 뭔가를 계속 썼고 나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썼다.

커피 한잔을 주문했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놓고 오호츠크해를 보고 있었다. 여행의 피로와 함께 깊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마음에 사연이라도 담고 왔었다면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 만 같았다.

기타하마역을 다녀온 뒤로 나는 일본 철도 여행을 계속하면서 바닷가 혹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수많은 무인역들 지나치기도 하고 일부 역은 직접 내리기도 했다. 그 수많은 역들의 모습을 여행 기록으로 남겼지만 기타하마역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에 찾아간 기타하마역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짙고 푸른 오호츠크해도 그대로였고. 아바시리 쪽 해안선도 변함이 없었다.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느껴졌다.


대합실의 풍경들도 여전했다.

저 멀리 겨울 풍경 속에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다. 나는 다시 오래전 기타하마역의 썼던 글을 다시 떠올렸다.

" 저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나를 싣고 아바시리로 데려다 줄... 이 역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고 어떤 이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 편지를 보낼 수가 없다...기타하마에서 쓴 편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역에서 쓸쓸한 느낌... 하지만 삶의 여정에서 이렇게 한가롭고... 평화로운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바쁜 일상에서 사람들 속에 부딪혀 살아가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간이역에 앉아 바다와 노을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을 살펴보고... 글과 편지를 쓰고... 아름다운 풍경만을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게 여행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이 쓸쓸한 간이역에.. 만약 가깝든 멀든 미래의 어느 날에 이곳에 다시 올 때는 나 또한 이 역 안 어딘가에 내가 왔었다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기타하마 다음이 모코토역藻琴駅이다.

%EB%AA%A8%EC%BD%94%ED%86%A0%EC%97%AD.jpg?type=w773 모코토역

1924년에 개업한 역으로 1986년까지는 역무원이 근무하던 역이었다. 이 역은 히가시모토코촌영궤도선이라는 약 30km의 지선이 이어져 있었다. 이 지선은 1935년에 개통되었다가 1961년에 폐선이 되었다. 역명은 아이누어 무쿠토 ムク・トゥ(엉덩이가 막혀 있는 늪)에서 유래되었다. 참고로 히가시모토코에는 동부 홋카이도 3대 꽃명소중의 하나인 모토코야마 꽃잔디 공원이 있다.

1280px-Higashimokoto_Phlox_subulata01.jpg?type=w773 히가시모토코야마 꽃잔디공원


%EB%AA%A8%EC%BD%94%ED%86%A0%EC%97%AD1.jpg?type=w773

역사 내부이다. 예전의 역사 사무실에는 트럭이라는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가게가 영업을 했지만 2023년 10월에 폐점했다. 모코토역의 플랫폼 오른쪽이 오호츠크해이다.

%EB%AA%A8%EC%BD%94%ED%86%A0%EC%97%AD2.jpg?type=w773


%EC%9C%A0%EB%B9%99_%EC%97%B4%EC%B0%A8.jpg?type=w773 모토코역과 기타하마역 사이를 달리는 1973년의 센모본선의 증기 기관차이다.
senmomap.jpg 동부 지방의 옛 철도 노선도


모코토 역 다음 역은 마스우라역鱒浦駅 이다. 1924년에 개업한 역으로 2015년에 역사를 개축했다.

%EB%A7%88%EC%8A%A4%EC%9A%B0%EB%9D%BC%EC%97%AD.jpg?type=w1

새로운 역사

%EB%A7%88%EC%8A%A4%EC%9A%B0%EB%9D%BC%EC%97%AD1.jpg?type=w1

옛 역사 사진, 이 역부터 오호츠크해를 볼 수 있다. 1996년까지 이 역 부근에 해수욕장이 있었다고 한다. 역명은 옛날 아이누인들이 이 부근에서 송어잡이를 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제 아바시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역이 가츠라다이역桂台駅이다. 1967년에 개업한 역으로 역이름은 역의 서쪽에 있는 가츠라정과 동쪽에 있는 다이정에서 각각 앞글자를 따와서 이름 지었다.


%EA%B0%80%EC%B8%A0%EB%9D%BC%EB%8B%A4%EC%9D%B4%EC%97%AD.jpg?type=w1 가츠라다이 역의 홈

역 주변에는 아바시리지청, 아바시리 간이 재판소, 구시로 지방 검찰청 아바시리 지부 등 아바시리시의 주요 관공서들이 있다.

JR_Senmo-Main-Line_Katsuradai_Station.jpg
Katsuradai_station02.JPG

센모본선 여행은 아바시리역에 도착하면서 끝이 난다. 아바시리역과 아바시리 주변 여행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이어진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