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시리시에 도착하다.
삿포로에서 특급 오호츠크를 타면 아바시리까지는 무려 5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아바시리역에 도착하면 역전에 이런 모습을 마주 대하게 된다. 사진에 보이는 물고기는 연어로, 이 지역 어부들이 전통적인 염장제조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JR아바시리역은 현재 센모본선, 세키호쿠본선의 종착역으로 일본 철도역들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하면 맨 처음에 위치한다.
*센모본선釧網本線(아바시리역과 구시로의 히가시 구시로역을 잇는 노선)
*세키호쿠본선 石北本線, (아사히카와시의 신아사히카와 역과 아바시리역을 잇는 노선)
공교롭게도 이 2개의 노선 모두, JR홋카이도 유지 곤란 노선으로 발표한 노선들로, 노선 주변의 지자체들이 일정한 유지 비용을 내지 않는 한 결국은 폐선할 수밖에 없는 노선들이다. 간단하게 말해, 현재 상황에서 뚜렷한 열차 이용객의 증가나, 노선 주변의 지자체들이 비용을 분담하지 않은 이상, 이 노선은 결국 사라지게 되고 그때에는 아바시리를 고속버스, 자동차, 항공편으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철도여행 마니아로서 이는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아바시리역은 현재 일본 철도의 열차 환승역으로는 최북단역으로 지금은 폐선이 된 유모선湧網線의 종점역이기도 했다. 유모선은 1935년에 개업한 노선으로 나카유베츠에서 아바시리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었다. 이 노선은 아바시리 북쪽의 해안선과 호수를 지나는 노선으로 연선의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지금도 이 철도노선이 운행을 하고 있었다면 아바시리에서 기차를 타고 거대한 사로마호수를 지나서 서북쪽의 나카 유베츠에서 나요로 본선으로 바꿔 타고 엔가루, 아사히카와를 가거나, 혹은 그 더 위쪽의 몬베츠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폐선이 된 유모선의 노선도
한때 사로마호수와 노토로호수를 돌아서 운행했던 유모선의 증기기관차 1974년경의 사진이다. 유모선은 1987년에 폐선되었다.
다시 아바시리역으로 돌아와서 아바시리역은 1912년에 개업했으며, 현재의 역은 1932년에 개업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아바시리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아바시리역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조금 의아스러울 것이다. 보통 일본의 주요 도시 역은 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아바시리역에 내려서 역전으로 나와보면, 몇 개의 호텔이 있을 뿐, 그 흔한 식당도 많지 않다. 구시로역이나, 아사히카와역, 삿포로역을 연상해 보면 쉽게 와닿을 것이다.
첫 번째 아바시리역은 하마아바시리역浜網走駅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지만 1984년에 폐역이 되었다. 이 역은 현재의 역위치에서 동쪽 바다 쪽으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당시의 하마아바시리역은 시가지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아바시리역이 개업했을 때는 시가지 중심부에 있었고 지금의 역은 시가지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1924년에 아바시리 본선(현재의 센모본선의 일부)의 아바시리-기타하마역이 개업하면서 첫 번째 아바시리역이 중간역이 되어 아바시리에서 기타하마역 방면은 스위치 백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원래 스위치 백이라는 것은 경사진 곳을 교대로 올라가는 경우에 해당되지만 이 경우의 스위치 백은 방향 전환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구시로 방면에서도 아바시리를 향한 철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이것이 모든 운송량의 대폭적인 증가가 예상되어 스위치 백을 할 경우 여러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아바시리역 이전 계획이 세워져 현재 아바시리역이 있는 지역의 하천 매립이 진행되었고 1932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 개업했다. 이 이전 때문에 현재 아바시리역 앞이 다른 역과는 달리 휑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현재의 아바시리역은 1977년에 개축했다.
1974년의 아바시리 역 구내에 정차되어 있던 열차들의 사진이다.
개축되기 이전 1976년의 아바시리역
여름날의 아바시리역이다. 아바시리역의 표지판이 세로인 것은 이 지역에 있는 아바시리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석방되어 돌아갈 때 다시는 옆길로 빠지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서 그렇다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구내에 정차해 있는 특급 오호츠크호
아바시리역 앞은 국도 39호선 도로가 있고 그 옆으로 호텔들이 모여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시내 중심지와는 떨어져 있어서 식사를 하려면 조금 걸어야 한다. 물론 시내 중심지라고 해봤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겨울에 아바시리에 도착했을 때 일행들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가 아무리 걸어도 식당을 찾지 못하고 결국은 kfc에 들어가 치킨으로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바시리역이 있는 아바시리시는 어떤 곳일까?
아바시리는 홋카이도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로 오호츠크 종합 진흥국의 청사소재지이다. 겨울에는 유빙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은데 ‘아파시리’(ア・パ・シリ, 우리가 찾은 땅) 또는 ‘아바시리’(アパ・シリ, 들어가는 땅)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근거가 높다. 시의 면적 471 km², 인구 약 3.5만이다.
아바시리시가지
1872년 아바시리촌(アバシリ村)이 설치되었고 1875년에 網走라는 한자가 부여되었다. 1902년 주변의 여러 마을들을 합병하였고 1915년 추가 합병이 있었다. 이후 몇 차례 행정구역 조정을 거친 끝에 1947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아바시리는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아바시리 형무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겨울에 유빙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아바시리 형무소와 감옥 박물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까 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메이지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범들이 많아서 기존의 감옥이 모두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1885년 당시 8만 9천 명을 수용해야 했다.)
마침 홋카이도 개척이 중요하게 됨에 따라 홋카이도 주요 지역에 集治監(슈지칸)이라는 감옥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1881년 죄수를 노동력으로 사역시켜 홋카이도 개척과 국방을 강화하고 형을 마친 후에 홋카이도 정착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아바시리에 감옥을 설치했다. (당시의 명칭은 구시로감옥서 아바시인도외역소 釧路監獄署 網走囚徒外役所) 처음에는 50여 명씩 아바시리 지역으로 옮겨온 죄수들은 계속 늘어나서 1200명이 되었고 이를 감시할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이주해와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아바시리는 갑자기 번창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죄수들을 당시 홋카이도 개척을 위한 도로 공사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원래 시베챠에 있던 시설에서 1200명의 죄수들을 아바시리 지역으로 데리고 온 것도 도로공사에 투입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아바시리에서 기타미 고개까지 160KM의 도로를 개설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홋카이도의 거친 지형과 곰과의 싸움이었다. 밤낮으로 진행된 작업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죄수 2명을 쇠사슬로 연결했다. 공사 현장이 산속 깊은 곳이기 때문에 식량 운반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영양실조나 부상등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당시 죽은 죄수들을 현장에 묻고 그의 사슬을 묘비옆에 두었기 때문에 이런 죄수들은 무덤을 쿠사리즈가鎖塚 라고 불렀다. 이 공사과정에서 간수를 포함하여 2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게 되었고,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자 1894년에 폐지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아바시리 감옥을 1983년 전면 개축 공사로 인해 기존 건물들의 철거가 문제 되자 기존 감옥의 시설들을 현재의 지점으로 이축 복원한 것이 오늘날의 아바시리 감옥박물관이다.
현재 기타미시 도로에 있는 쿠사리즈가
당시 도로개설 작업에서 사망한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
아바시리 감옥의 건물들은 1909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1910년에 복원된 건물들이 오늘날 감옥박물관의 주요 건물이 되었다.
아바시리 감옥은 아바시리 강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다리는 가가미바시鏡橋로 모두 4회에 걸쳐 재설치되었는데 현재의 다리는 1917년에 건축된 것을 재현한 것이다. ‘가가미바시’에는 맑게 흐르는 물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바르게 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의 정문, 정문 좌우에 있는 원형 시설은 간수가 근무하는 시설과 수형자들의 감옥이 면회를 와서 대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구 아바시리 감옥 청사
1912년에 건축되어서 1988년에 이축한 이 건물에는 최고 책임자인 형무소장실을 비롯해서 회의실, 총무과, 경비과, 용도과, 교육과, 작업과 등 형무소 관리부문의 중심이 된 건물이다.
구) 아바시리 형무소 후타미가오카(二見ヶ岡) 형무지소
아바시리 서쪽 구릉지에 설치되어 있는 ‘구 아바시리 형무소 후타미가오카 형무지소’는 아바시리 형무소의 농원작업을 선도한 시설로, 형무소 내에서의 생활 태도 등과 관련해서 개선을 인정받아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던 죄수들을 수용했던 곳이었다.
1896년에 건축되어서 일본에 현존하는 목조 형무소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실제로 100년간 형무소로 계속 사용되다가, 1999년 박물관으로 이축된 후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아래사진부터는 또 다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구) 아바시리 형무소 감옥 및 중앙 초소이다.
벨기에의 감옥을 모델로 해서 1912년에 건축되고 1985년에 이축된 이 감옥은 실제로 1984년까지 ‘아바시리 형무소’의 교도소로 72년간 사용되었다. 교도소라는 무거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철근으로 이은 퀸 포스트 트러스(queen post truss)의 루프 프레임과 천정에서 비추어 들어오는 빛이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팔각형의 중앙 초소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5개의 건물동을 바라볼 수 있는 기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대 7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구) 아바시리 형무소 교회당
죄수들에게 정신적, 윤리적, 종교적인 지도를 행하기 위한 장소였던 ‘교회당’ 건물. 1912년에 건축되고 1981년에 이축된 후 중요문화재로서 지정되었다.
정문옆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죄수인형이 서 있는데 이것은 메이지 시대의 탈옥왕 ‘고순쿠기(대못)의 도라기치(五寸釘の寅吉)’를 본뜬 모형이다. 다른 감옥에서 6번이나 탈주하고 도주하던 중 대못을 밟았지만 그 상태로 12km나 더 도주했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바시리 감옥으로 이송 수감된 후에는 모범수로 복역하며 정문 앞 청소 등을 담당했다고 한다.
일본의 근대 건물들 중 특히 감옥시설을 둘러보면 문득 일제하의 우리나라의 감옥들도 이러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감옥에 수감되는 것이야 말할 게 없지만 사상범들 그러니까 일제에 대항한 독립투사들이 이런 감옥에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자 이렇게 구시로에서 출발한 센모 본선의 여행은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바시리 여행에 대해서는 또 다른 철도 노선인 세키호쿠선 여행때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이제 다음 철도 여행기는 홋카이도를 떠나서, 규슈 지역의 여행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