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머릿결에서 국화 내음 같은 좋은 향이 났다
여름 내내 애지 중지 키우던 국화가 이제 피었다. 오가며 국화꽃 향기를 맡자니, 문득 오래전의 영화 국화꽃 향기가 생각났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그녀, 장진영. 영화 국화꽃 향기는 소설가 김하인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것으로 2003년에 개봉했다. 벌써 21년 전이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 영화이지만 내가 본 잊지 못할 순애보 영화목록에 있으며 영화 ost 또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말기암 선고를 받은 세 살 연상의 여자와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의 여자는 암환자의 몸으로 아이를 갖고 기꺼이 아이를 선택한다. 작가의 이웃집에 사는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낌없는 사랑을 나눴던 이야기로 유명하다. 원작소설의 두 주인공의 이름은 승우와 미주이지만 영화에서는 인하와 희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영화 ost 중에서 맨 처음 들어볼 것은 "희재를 처음 본 날 "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sF425Mmog
"처음본건 지하철에서였어요. 오늘처럼 바들바들 떨면서도 할 말도 하고.. 저 선배 뒤에 있었어요. 그리고 지하철 자판기 앞에서 동전줄 때 바람이 불었고 선배 머리칼이 날리면서 국화꽃 향기를 맡았어요. 이런 향기도 나는구나..... 그땐 저도 열병인 줄만 알았어요. 그래서 말 안 하고 못하고 여기까지 왔어요.."
인하의 내레이션..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이 감성 멜로 영화의 핵심적인 문장이 담겨 있다.
"세상 마지막 순간보다 슬픈 건,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소 촌스럽기도 하고, 온몸이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하던 그 시기의 나도 편지에 곧잘 이런 표현들을 쓰곤 해서 낯설지 않았었다.^^
이 영화 ost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성시경의 희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D1p_H3qo_A
이 노래의 가사는 발라드 작사를 잘하기로 유명한 양재선이 썼다. 멜로영화이지만 전체적인 연출은 다소 부족한 편이었던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표현만큼은 다른 멜로 영화를 압도했다.
“그녀의 머리에서 국화꽃 향기가 났습니다!!”
–1992. 3. 10 희재를 처음 만난 날, 인하의 일기장 中에서-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모르십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곤 했는지… 왜 그렇게.. 왜 그렇게.. 나를 그립게 만드시나요? 하지만 난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아마도 나는 이제껏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뿐입니다”
-‘한밤의 음악세계’에 보낸 인하의 사연 中 에서-
“ 나, 머잖아 당신을 떠나, 나 머잖아 죽는대, 하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이 무서워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떠날 수 없는데, 내 사랑이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건 너무나 싫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 때문에 절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
-1999. 11. 9 희재의 일기장 中에서 -
마지막으로 이 ost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음악은 perry como의 santa lucia이다. 이 ost의 cd를 차에서 자주 듣고 다녔을 정도로 괜찮았다. 주로 벚꽃이 피는 봄에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GzhK6WRs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