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기억들

비가 내릴 때

by 늘 담담하게
비오는.jpg

그때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지금 저 쏟아지는 비 사이로 어떤 냄새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


그 말을 들은 건 여름이 막 시작 될 무렵이었다.


아직까지 감성이 약하기만 했던 그때의 나는 그녀가 말한 냄새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비가 내려 서늘하고 촉촉해진 공기 속으로 맑고 시원한 냄새 같은 게 있어.. 난 그게 참 좋아..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도 좋고,..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지? "


"그야 6월이니까.. 여름이 시작되는 것은 맞는데, 네가 말한 냄새 같은 건 잘 모르겠는데.."


"눈을 잠시 감고 크게 숨을 들어쉬고 다시 내뱉어봐, 뭐가 서늘한 것들이 느껴지지 않아.. 이건 가을날에 맡아보는 차가운 공기와는 또 달라, 적당히 습한 느낌도 들면서, 뜨거운 햇빛아래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로수의 나뭇잎들 아니 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그런 냄새도 섞인 것 같은..."


"글세..."


"풋"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그녀는 싱겁다는 웃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아이가 말했던 것들을, 한참이나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아이의 모습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그날의 비 내리는 풍경,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만이 간신히 남아 있었다.



어제저녁 많은 비가 내렸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뒤, 택시를 기다리는데,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 아이가 말했던 그 냄새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나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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