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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아픈 이유는

뒤늦게야..

by 늘 담담하게

오늘도 익명을 요청하신 여성분의 사연입니다.


"그와 나는 대학 입학 이후 만난 오래 친구 사이였습니다. 남녀 사이에 친구라는 게 있을까 싶었지만 그와 나는 처음부터 아주 좋은 친구라고 선언했고, 시간이 가면서 그게 익숙하고 편했어요. 연인이 되었다면 싸우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지쳐서 이별을 하게 되었을 텐데, 그와 나는 절친, 혹은 여사친 이렇게 부르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도 했지만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고 가끔 술에 취하면 그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어이 친구, 우리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솔로이면 2층 집에서 함께 살자, 위층에는 내가 아래층에는 내가.. "


그러면 그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자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나는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함께 뭉쳐 다녔고, 그가 입대를 할 때에도 여자 친구도 아닌데 울면서 그를 보냈습니다. 면회도 갔고요.. 그리고 그가 다시 제대를 해서 복학을 할 때까지 교환학생으로 외국도 다녀오고 해서 그와 나는 다시 캠퍼스에서 함께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을 하기 위해 온 노력을 다한 끝에 그와 나는 각기 다른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내가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해, 투정을 부리고, 울 때에도 그는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회사 생활을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술을 마시고 있을 때, 그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니 투정과 고민을 다 받아주는 내가 어느 날 사라지면 너 어떡할래? "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만 그냥 그는 웃으며 얼버무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흘리듯 말한 것에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던 것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 뒤에야 그가 소개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과 그 사람과 결혼하기를 그의 집에서 강권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친구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냥 쓰러질 것만 같았어요, 이게 뭐지,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친구라고, 나에게 이상한 마음 같은 것은 품지 말라고, 고백 이렇게 하면 죽는다고 그렇게 말해왔었는데, 그 말대로라면 그를 응원하고 아니 축하해줘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대학 친구들과 모임에서 그는 어떤 여자와 함께 왔고, 그 순간 그녀가 그의 여자 친구, 아닌 연인이라는 것을...


그날 밤 나는 그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술마 마셔댔고, 인사 불성이 돼서 집으로 돌아온 뒤 어두운 제 방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에서야 나는 그를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 사랑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제 감정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고 편하대로,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20대 초반에 이미 겪어야 했던 실연의 상처를 뒤늦게 앓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임을... 그래도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아니 그의 앞에서도 괜찮은 척했습니다.


이제 그는 결혼식 날짜를 잡았고, 내게도 청첩장을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2층 집에서 함께 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런 나를 그는 애잔하게 바라보았고 나를 안아주며 등을 도닥여주었습니다. 그도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서른이 넘은 지금, 지난 10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오늘 사연을 보내주신 분,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솔직히 난감합니다.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놓쳐버린 그 마음.... 그리고 지금 뼈아픈 이별의 고통... 님에게 이런 글 한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애경 님의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중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별이 아픈 이유는 우연히라도 너와 더 이상 마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내 삶의 반경이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너에게 가는 데 익숙했던 발걸음을 다잡고 익숙한 거리를 피해 애써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건 마치 관성을 거스르듯 자연의 법칙을 깨는 일이라 몇 배의 힘과 노력을 요하는 서툰 작업. 쓰지 않던 마음의 근육을 써서 너에게로 가려는 마음을 제자리로 당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마디 조언을 해드리자면, 다음에 혹시 만나게 될 그 누군가에게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친구로 묶어두려는 것도 그만하셔야 할 것 같고요.


부디, 현재 겪고 있는 그 고통스러운 마음에 작은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이 사연에 노래 한곡을 띄워 보냅니다. 2019년에 발표된 헤이즈의 내 맘을 볼 수 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ANfUH55XtbU&list=RDANfUH55XtbU&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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