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감정
오늘 사연은 익명을 요청하신 남자분이네요
"저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20대에 몇 번의 연애사가 있었지만 딱히 깊은 사랑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같은 회사 여자 동료 그리고 그녀의 친구와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술자리에 합석하는 정도인데 이상하게 이야기도 잘 통하고,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서, 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료에게 넌지시 사귀는 사람은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로는 만났던 사람은 있었고 지금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녀와 만나는 횟수를 늘려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엇갈렸습니다. 제가 시간이 나면 그녀가 바쁜 일이 생겼고, 그녀가 좀 한가해진다고 하면 이번에는 제가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에게 무슨 핑계든 연락을 했어야 했습니다. 호감을 내보이긴 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고,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다가가면 뭔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저의 오판이었고, 착각이었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버린 것입니다.
그녀에게 본격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드디어 약속을 잡았습니다. 아직은 뭐 두 사람만 만나기는 어색해서 직장동료도 함께 했습니다. 동료 또한 그녀에게 제 감정을 알고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술이 취했을 때, 그녀가 갑자기 지난 남자친구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편했던 것일까요? 아니, 저에게는 딱히 어떤 감정이 없었던 것일까요? 저도, 동료도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왠지 후회와 안타까움, 그리고 미련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그 사람이 생각난다는 그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 아, 나는 이 사람에게서 어떤 호감도, 감정도, 생각도 남기지 못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존재감이 없는, 그저 친구의 회사 동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임을... 그녀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눈앞에 놓인 술잔을 단순히 마셔버렸습니다. 술맛이 그렇게 쓰디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보여주려 했던 제 감정은, 아니 저의 감정은 다시 품속에 넣어두어야 했습니다. 그녀들이 돌아온 뒤, 나는 더 웃으며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그녀도 약간은 웃더군요, 그러는 사이 제 마음은 더 슬퍼졌는데도..
그녀가 술에 취했기 때문에 회사 동료가 그녀의 집까지 같이 가주기로 하고, 택시를 태워 보내고 난 뒤,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도 허전하고 쓸쓸했는지... 그 날이후로, 동료는 미안해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뭘 어떻게 시도해 본 것도 아니고, 감정을 고백한 것도 아니기에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짝사랑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아무튼, 마음을 굳게 잡아야 할 텐데... 쉽지 않습니다. "
사연의 내용을 보니, 감정을 미처 전해 보기도 전에 접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었네요. 그 마음 이해됩니다. 저 또한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지라, 공감이 갑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랑의 길은 앞으로 가기는 쉬워도, 뒤돌아 나오기는 정말 어렵다고요.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그게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다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말은 쉬워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 그분이 예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 것도 아니라면 아직 뭔가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마음은 정리하되, 그분 곁에 담담하게 서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두 분의 인연이 어떻게 될지, 아직 끝이 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말씀드립니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최해준 시인의 짝사랑이라는 시를 들려드립니다.
짝사랑
이제는 잊겠노라
마음 다지며
휘적휘적 골목길 돌아 나와도
불 켜진 창가에
머무는 눈길
아직도 뒤에 남아 오지를 않네.
행여나 바람결에
들려오려나
발걸음 점점 더 느려지지만
귓전에 맴도는 건
바람 소리뿐
보이는 불빛만 흐릿해지네.
그래도 자꾸만 아쉬운 듯해
한 번만 뒤돌아 가고 싶은데
말릴 듯 못 말리는
어설픈 마음
기어이 오늘밤도 가로등 아래
아픈 마음 걸어 놓고
새벽을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