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월리엄에게
친애하는 월리엄에게
기차역에서 떠나는 당신을 바라보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떠나는 기차가 좋던 시절의 쓸쓸한 공허함을 남기면 남은 이는 필사적으로 그리고 헛되이 좋아하는 일들로 공허함을 채우려 하죠.
왜 우린 전쟁 중에 만난 걸까요? 이런 전쟁통에 아니었다면 지금쯤 결혼했을 테고 종일 황량한 사무실에서 시계만 보지도 않았을 것을...
우리 함께했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그 시간을 1분이라도
멈출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고되고 힘든 날이더라도 마냥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지 마세요.
서로를 찾아낸 게 지금이란 사실이 너무나 아쉬워요. 사랑을 담아 팸이...
참 애틋한 편지다. 영화나 소설에서 편지글을 읽으면 더 주의 깊게 살펴보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 뜻밖에도 이런 편지를 알게 되다니.. 얼핏 보면 팸이라는 여자가 월리엄이라는 남자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내용일 것 같지만 여기서 월리엄도, 팸도 실제의 인물이 아니다. 영화 민스민트 작전은 실화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중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 침공을 위해 기만 작전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독일은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상륙 작전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거기에 병력을 증강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독일군에게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 하기에 영국은 어떻게든 독일의 시선을 시칠리아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민스민트 작전으로 연합군이 시칠리아가 아니라 그리스에 상륙할 것으로 독일군을 믿게 만들었다.
구체적인 작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체를 하나 구한다.
시체를 영국군 장교로 꾸민 다음, 안주머니에 위조한 1급 서류를 넣어둔다. 이 서류에는 연합군이 시칠리아가 아닌 다른 곳에 상륙할 것이라고 적어둔다.
마치 해당 시체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하여 사망한 것처럼 보이도록 해안가에 투하한다.
독일군 측에서는 이 서류가 실제 기밀문서이며 우연히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에 독일군 측은 우리의 계획대로 시칠리아가 아닌 다른 곳에 집중할 것이다.
작전을 위해 영국 정보부 측에서는 시체를 한 구 구해왔고 그 시체에게 "윌리엄 마틴 소령"(Major William Martin)이라는 가짜 신분을 부여하였다. 시체에 영국 해군 장교복을 입히고 서류를 준비해 안주머니에 넣어두었으며, 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도록 가상의 가족이 보낸 편지와 가짜 약혼녀의 사진, 그리고 여자친구를 위한 약혼반지 영수증과 극장 티켓까지 위조해 같이 넣어두는 꼼꼼함을 발휘하였다. 가짜 신분증의 사진은 처음에는 시체의 얼굴을 직접 사진 찍어 보았으나, 결과물이 누가 봐도 시체 사진인 탓에 결국 '마틴 소령'과 얼굴이 닮은 군인의 사진을 찍어 사용했다. 어차피 시체가 물에 불면 얼굴이 어느 정도 망가지기 때문에 사진만으로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힘들 것이었다.
이후 잠수함인 HMS 세라프를 통해 "마틴 소령"을 스페인 해안가에 투하하였다. 이 "탈출했다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은 조류를 타고 해안에 닿았고, 이후 독일 첩보기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정보부의 계획대로, 독일군은 시신과 함께 버려진 가짜 1급 기밀문서를 통해 연합군이 그리스나 사르데냐 섬에 상륙한다고 오판을 해버렸다.
시체의 주머니 속에는 약혼녀가 월리엄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바로 위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적을 믿게 하기 위해 가상의 월리엄과 약혼녀 팸을 만들었고,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처럼 보이는 연애편지를 쓴 것이다. 저렇게 절절한 내용의 편지를 읽고 속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이 작전에서 존재하지 않던 남자( The man who never was/)로 불리는 이 시체의 정체는 글린두르 마이클(Glyndwr Michael)이라는 웨일스 출신 부랑자로, 실제 정체는 오랫동안 기밀로 남아 있다가 1996년이 되어서야 정체가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실제 부검을 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아무 시체나 준비할 수도 없었고, 유가족에게 시체를 가져가는 목적을 설명할 수도 없었기에 적당한 시체를 구하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 결과적으로 실제 시체의 사인은 익사가 아닌 중독(실수로 쥐약을 복용)이었는데, 당시 작전에 협조하였던 병리학자 버나드 스필즈버리(Bernard Spilsbury)는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라 부검에 회의적이므로 사인을 꼭 알아야 하지 않는 이상 부검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한다면 추락 도중 쇼크로 인해 죽을 수도 있으므로 꼭 익사한 것처럼 꾸밀 필요는 없다"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약혼녀"의 정체는 당시 정보부에서 일하던 여성 직원 진 레슬리(Jean Leslie)였으며, 편지에서는 팸(Pam: 파멜라의 애칭)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전후 시칠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던 병사와 결혼했다.
그렇다면 그 시체는 어디에 묻힌 걸까? 시체는 스페인 우엘바에 위치한 한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묘비명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William Martin, born 29 March 1907, died 24 April 1943
(윌리엄 마틴, 1907년 03월 29일생, 1943년 04월 24일 사망)
Beloved son of John Glyndwr Martin and the late Antonia Martin of Cardiff, Wales
(존 글린두르 마틴과 고 안토니아 마틴 오브 카디프의 아들, 웨일스 출신)
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 R.I.P.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은 영예이다. 평온 속에 잠들지어다.)
Glyndwr Michael Served as Major William Martin, RM
글린두르 마이클, 왕립 해군에서 소령 윌리엄 마틴으로 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