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에게

지나간 사랑도 사랑이었음을...

by 늘 담담하게

한때 자주 만나던 몇몇의 사람들이 만든 잡담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잡담멤버 중에... 나 못지않게 감성적인 그가 말했다.

"모두들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 알지? "

"새벽에 하는 거라서 잘 듣지는 않지만 알고는 있어.. 그런데 왜?"

"거기에 그런 코너가 있었어... 사랑이 사랑에게라는..."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하는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는 의외로 듣는 사람이 많았다. 언제인가, 늦은 저녁에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그 택시기사아저씨도... 그 방송을 열심히 듣고 있기에... 어떠냐고 했더니... 자기는 열성팬이라나...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 박스는 1999년 9월 13일부터 2006년 10월 19일까지 매일밤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방송되었던 SBS의 대표적인 심야 라디오 방송이다.)


어찌 되었건.. 갑작스럽게 심야 방송이야기를 꺼낸 그가 말을 이어갔다.


"작년이었던가. 그 코너에 나온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게 있는데...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어떤 남자가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다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을 켠거야. 그런데 그때 마침 어떤 사연이 소개되었어... 이런 이야기였어...


김은진 씨가 보낸 사연입니다. 언니.. 우리 동네 허름한 빵집이 하나 있는데요. 헤어진 남자친구가 그 빵집 치즈케이크를 좋아했었어요. 다른 집보다 치즈맛이 덜한데 자기는 그게 좋다고요. 근데 오늘 그 빵집에 갔는데 주인이 바뀌었더라고요. 턱수염이 멋진 아저씨였는데 근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이젠 남자친구가 다시 돌아와도 예전 그 맛이 나는 치즈케이크를 다시는 같이 먹을 수 없다는 게 허전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이미 다른 빵집 치즈케이크에 푹 빠져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예전의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이십 대 여성이 된 것처럼 그의 진지한 설명이 끝나자....


"오 마이 갓... 어찌 그런 일이..."

"참 안타까운 사연이네...."

"그 여자는 이제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을까?"

"생뚱맞게 넌 그런 이야기를 하니?"

"아니 궁금해지잖아.."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할 때.. 나는 문득 잠시 회한에 젖은듯한 그의 표정을 보았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어째 좀, 그 사연이라는 게 너의 이야기와 왜 이리도 가까울까?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것도, 여친과 헤어진 것도 그렇고.."

그렇게 내가 그에게 묻자.. 모두들 그를 쳐다보았다..

"어... 어,... 아니,... 뭐..."

당황하는 그의 표정을 놓칠세라... 모두들 그에게 진실을 밝히라고 몰아세웠다.


결국 그가 실토한 것은 일 년 전쯤에 헤어진.. 그의 여자친구가... 그가 즐겨 듣는 모 방송의 심야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낸 것을 그가 들었다는 것. 그녀도 이제 다 잊고 사는 줄만 알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어수선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말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두 사람의 삶에서 그 사랑이 한날한시에 싸악 사라져 버릴 수는 없는 거잖아... 한 사람은 이미 그 사랑을 지웠다고 하지만... 또 한 사람은 육 개월이 지나서야.. 혹은 일 년이 지나서야.. 아니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지울 수도 있는 거잖아... 사랑이 슬픈 것은.. 그렇게 각자의 끝이 다르기 때문일 거야.... 너는 이미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의 흔적을 다 지워버렸지만... 그 사람에게는 아직도 사랑이 끝나지 않은 거지..."


그러자 그는 소주 한잔을 들이키며 쓸쓸하게 말했다.


"그래.. 맞아... 그 앤 아직 사랑을 못 끝내고 있나 봐... 아까 말했던 그 사연... 그 사연이 끝나고 난 뒤에.. 정지영 씨가 그렇게 말했어. 사랑이 사랑에게 말합니다. 지나간 사랑도 사랑이었음을 기억하라고.. 그녀에겐 아직 지나가지 않은 사랑임을 기억하라고..."


잠시의 정적이 이어지고 있을 때.. 강동구에 살던 그녀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들... 사랑의 숙제는 이제 다 끝낸 거야? 오빠도... 예전의 사랑.. 이제 다 지나간 거야?"

"애,, 또 취했다.... 애는 소주만 마시면... 마구 들이대더라.."


그렇게 말했지만... 그 순간... 그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모두... 각자.. 자신의 사랑이 다 끝난 것인지... 이제는 다 지나간 것인지를, 되새겨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