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기다렸어요

by 늘 담담하게
비 오는 밤, 가로등 아래에서 기다리다.png

언젠가 내가 그에게 말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득 내가 사는 곳을 쳐다보면 불이 꺼져 있어.. 언제나 불이 켜질 수 있을까?"


술김에 그에게 그렇게 푸념을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었다.


"난 말이지, 벨을 누르면 누구냐고 묻고, 문을 열어주는 그런 것이 몹시 부러워... 특히 겨울에 말이야..."


그도 그렇게 쓸쓸한 푸념을 했는데, 그 일 년 뒤쯤 그는 오다가다 어찌어찌해서 한 여자를 만나,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살게 되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생에 있어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 그냥 사는 것이라고 했는데.. 같이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가 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어서 동네 어귀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인기척에 그는 깜짝 놀랐는데 인기척을 내며 다가온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이제 와요? 늦었네요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그는 멍하니 쳐다만 봤다. 아직은 따뜻하기보다는 쌀쌀한 초봄이어서 그녀는 두툼한 옷을 걸친 채 서 있었다.


얼마뒤에 그가 말하길,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준 것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 외에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는 망치로 한방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울컥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했다.


눈물을 참느라..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별 일도 다 있다고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웃기는 이야기라도 해도...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오래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이 홀홀 단신으로 혼자서 살아가느라, 결혼도 많이 늦어버린 그...


그렇게 혼자 사는 그를 안쓰럽게 여긴 그 누군가의 소개로 몇 번 만나 함께 살게 된 그녀... 나이가 많아 아이도 가질 수가 없었던 그녀였지만...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서 그를 그날밤에 울리고야 말았다.


나중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스테파노..... 내가 철부지 어린애 같아 보이겠지만 요즘은 말이야... 인생 살만해...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어.. 정말 몰랐는데... 그냥 좋아... 이제야 사는 것 같아..."



오늘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그렇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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