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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우라카미 성당

고난에 고난을 이겨낸...

by 늘 담담하게

1873년에 유배되었던 우라카미 신자들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서 교회를 세웠으니 그곳이 바로 우라카미 교회浦上教会이다. 이곳은 우라카미교회당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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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라카미 교회는 가톨릭 나가사키 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신도수가 7천 명에 달해 현재 일본에서 신도수나 건물규모로는 최대의 성당이다. 우라카미는 나가사키 북쪽에 위치한 농촌지역으로 일찍이 일본에서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신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 때문에 에도시대의 금교령 이후 잠복 기리스탄의 적발이 여러 번 있었고 그에 대한 탄압도 많이 받았던 곳이었다.


개국 이후 오우라 천주당이 건축되었을 때, 그곳에 찾아가 푸치쟌 신부에게 자신들이 잠복해 있던 키리스탄임을 고백했던 이들도 이곳 우라카미 주민들이었다.


1873년 유배에서 돌아온 주민들은 1879년에 작은 성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우라카미 성당의 시작이었다.


그 후 오우라 천주당에서 전담 신부가 와서 이듬해인 1880년에 우라카미 마을의 촌장의 부지를 매입해서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


1895년에 기공식을 갖고 건축을 시작할 때 오우라 천주당에 못지않은 동양의 전당을 만들 것을 목표로 하여 장장 19년의 시간을 거쳐 1914년 3월 17일 마침내 성당이 완성되었다. 이 날은 오우라 천주당에서 잠복 키리스탄임을 고백한 날로부터 49년이 된 감격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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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된 당시의 성당의 사진, 신자들이 벽돌을 하나하나 날라 지은 성당이었다. 하지만 이 성당에 비극적인 운명이 닥친 것은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날이었다.


그날은 8월 15일 성모승천의 날을 맞이하여, 고해성사가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에 많은 신도들이 성당에 오고 있었고 성당에도 사제와 신도들이 모여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라카미 성당은 원폭의 폭심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폭발의 충격과 열로 인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성당 안에 있던 신도들과 성당으로 오고 있던 신도들이 전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당시의 사진들을 보자.

우라카미_폐허.jpg 1946년 1월 7일에 촬영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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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왜 이리도 거듭되는 고난이 찾아오는 걸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폭에서 살아남은 신도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23일 살아남은 신도 300여 명이 폐허가 된 성당터에 모여 우라카미 신도 원폭 희생 위령제를 지냈다. 이 폐허가 본격적으로 철거되기 시작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그해 7월 11일에 우라카미 성당의 석축 일부를 평화공원으로 이전하여 그곳에 원폭 유적으로 보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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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원폭으로 파괴된 우라카미 성당의 석축이다

img_1511635_63147439_8.jpg 평화공원으로 이축된 부분을 설명하는 사진.

1959년 11월 1일 우라카미 성당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재건되었다. 이 성당에는 1945년 원폭에 의해 성당이 파괴될 때 함께 파괴된 마리아상이 있었는데, 그 머리 부분이 뒤늦게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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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성당에 설치된 제단에는 원래 나무로 된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이 마리아상은 전쟁이 끝난 후 신부에 의해 잔해에서 발견되었다. 그 후 트라피스트 수도원과長崎純心大学에 보관되어 있다가 1990년에 우라카미 성당에 반환되었다. 이 마리아상은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갖고 있는데 로마 교황청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교황 베네틱도 16세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성모 마리아상을 세계 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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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안제라스의 종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원폭에 날아간 성당의 종탑의 일부가 천주당의 북쪽 약 30m 지점에 낙하한 것이 지금도 현지에서 저장되어 있다. 피폭 당시의 위치는 작은 하천이었지만 현재는 육지에 저장되어 있다. 피폭 시의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구 성당 본체의 유적이다. 우라카미 성당 앞에도 원폭 당시에 발견된 성당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우라카미 교회와 신도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믿음을 지켜온 이들, 처음 그들이 신앙을 갖게 된 이후 그들은 온갖 박해와 탄압,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그 온갖 고난의 세월을 이겨낸 우라카미 교회 앞에 선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성당 앞에 서서 교회를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성당이 다시는 박해나 고난 없이 영원히 계속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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