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일 학년을 마치고 마치 이미 미국에 가야 했던 것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원래는 미국 사촌이 있는 곳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학원을 찾아다니던 중 어떤 유학원 원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근데 따님이 무용하는데 예술의 도시에 가서 경험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라는 말에 나와 엄마는 뭐에 홀린 듯 생각을 바꾸어 원래 가려던 사촌이 있는 곳과 영국을 가볍게 잊어버리고 최종적으로 뉴욕으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뉴욕이 웬 말인가. 그때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였고 덕분에 가장 유학비가 비싼 나라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뀐 해였다. 정말 뭐에 홀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나와 엄마는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 뉴욕에 있는 어학원과 내가 지낼 숙소와 비자까지 모든 준비를 끝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국하는 날이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진짜 내가 뉴욕에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시아권의 다른 나라는 가봤어도 미국은 처음 가는 것이고 게다가 14시간이나 걸리는 나라를 혼자 간다는 것도 모든 게 처음이고 도전인 순간이었다.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아 부모님 차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겨울인데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모든 절차도 유학을 준비했던 것처럼 아주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부모님과 인사 나누는 순간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을 일 년 동안 못 본다는 생각에 눈가가 촉촉해진 거라기보단 공항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헤어짐에 대한 슬픔이 공존하는 그 공간의 묘한 기운에 눈물이 핑 돈 것 같다. 그렇게 첫 해외 살이 가 시작되었다.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첫 미국 유학이고 모든 것이 처음이라 긴장이 되어있던 상태였는데 옆자리의 여자분이 계속해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프신지 한 반쯤 와 가는 지점에서 피가 섞인 기침을 하시는 것이다. 너무 당황해서 승무원에게 알려야 하나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분은 아무렇지 않아 하셨고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 잤던 불편한 14시간 비행이 지나 드디어 뉴욕 땅을 밟게 되었다. 입국 심사도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끝났다. 약속되어 있던 뉴욕 현지에서 내가 생활할 숙소까지 데려다 주실 한국분이 나와 계셨다. 인사를 하고 드디어 맨해튼 안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들어섰다. 아직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날이 무척 좋았고 겨울인데도 춥지 않아 마치 가을 날씨 같았다. 구름은 어찌나 예쁜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몽글몽글한 구름이 맨해튼을 덮고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내가 지낼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높은 아파트였고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아쉽게도 몇 층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일 년을 살았는데도 말이다.)하지만 꽤 높은 층이 내가 지낼 곳이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도어맨이 반갑게 반겨 주었고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보여주듯 크리스마스 장식이 로비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분위기 좋은 로비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드디어 일 년간 지낼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엄청 큰 집이었고 총 4명이 같이 지내는 집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너무 놀라 행복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창이 정말 크고 아파트가 맨해튼을 바라보고 있어 로어 맨해튼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내가 지낼 창문으로 훤히 보인다니! 정말 행복할 때 두 손을 모으는 버릇이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두 손을 모은 체 맨해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장소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이런 풍경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기분이 안 좋아도 풍경이나 공간이 좋다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두 손을 꼭 모은 체 나의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2주는 룸메이트가 쿠바로 놀러 가서 혼자 지내야 했다. 뉴욕에 도착한 다음 날 마트에 먹을 것을 사러 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 음식 코너가 따로 있는 것이었다. 외국에 나와서 이렇게 쉽게 한국 제품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은 시차 때문에 조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3일 후 어학원에 갔는지 일주일 후 어학원에 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그렇게 뉴욕에 도착해 며칠을 쉬고 어학원에 수업을 받으러 가야 하는 날이 왔다.
맨해튼 안으로 들어가는 Path train(뉴저지와 맨해튼을 이어주는 지하철) 표를 사고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뉴욕을 느낄 수 있었다. 학원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영화 속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월스트리트 말로만 듣던 거리를 내 두 발로 걷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좋았다. 월가를 지나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맨해튼의 끝자락까지 내려갔다. 내가 다닐 어학원은 그곳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버튼이 안 눌리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 엘리베이터에는 각층에 고유번호가 있다는 것이다. 그 번호를 눌러야 내가 원하는 층에 내릴 수 있다며 내게 엘리베이터 타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어학원에 도착해 레벨 테스트를 보았다. 생각보다 높게 나와 당황했다. 어학원에 있는 선생님들은 정말 친절하셨다. 그렇게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모르는 말이라면 질문하고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면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며 정말 열정적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첫날 반 친구들과 매우 친해지고 어색함도 금방 사라졌다. 모든 게 낯설고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적응을 잘하는 나 자신을 보고 1년 동안의 뉴욕에서의 시간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