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 Oct 09. 2024

당신을 통해

인생을 잘 산다는 것.

어릴 적부터 집 근처의 작은 교회를 다녔다. 아마도 내가 3살쯤부터 다니기 시작했을 것이다. 교회의 첫 시작을 부모님은 함께하셨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는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목사님과 사모님은 너무 잘 알고 계시며 나의 성장 과정을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기도 하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나에게 늘 기도로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2022년 3월 목사님이 가지고 계시던 지병과 코로나로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고 결국 소천하셨다. 목사님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던 그 시기 난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우울감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난 나는 교회를 자연스럽게 다시 나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꼭 교회를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날의 목사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말이다. 목사님을 보자마자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감기로 목소리는 잠겨 나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목사님은 나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네가 다 치유됐다고 하니 참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시며 기도해 주셨다. 기도를 받기도 전에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까지 본 목사님의 모습 중 가장 연약해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감정의 늪에서 이런 분을 두고 허덕이며 인생을 불평불만 하며 지냈다니... 한없이 죄송하고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날 목사님의 기도가 마지막이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이날 목사님께 받은 기도가 목사님께 받는 마지막 기도가 되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인간으로서 가장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원래도 몸이 불편하셨던 목사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른 속도로 안 좋아지셨다. 하지만 늘 교회에 나와 설교를 준비하셨고 아프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요일마다 말씀을 전하셨다. 목소리도 잘 안 나오셨던 목사님은 30~40분 설교 말씀을 전하는 시간 온 힘을 다해 버티며 말씀을 전달해 주셨다. 본인이 맡은 사명을 끝까지 온 힘을 다해 마무리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 어떤 모습보다도 존경스럽고 경이롭다. 육체적 아픔과 불편함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는 그분의 모습만으로도 그분은 우리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셨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뵀던 날 생각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대단한 무언가가 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설령 그 사명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러면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사명과 지금 내 자리에서 해 나가야 하는 일들을  과연 최선을 다해해 나가고 있는지 말이다. 저렇게 육체적으로 힘드셨던 목사님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버티며 인내하며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셨는데 말이다. 가장 가깝게 그러면서도 멀리서 늘 함께해 주셨던 목사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울림이셨다.

이전 26화 액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