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렀던 잎사귀들이 점점 붉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고 바람마저 찬 기운을 머금고 낙엽을 쓸던 어느 날, 마음속에도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들어왔는지 캠핑장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점점 높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것 같은 이 천고마비의 계절에농익은 가을빛이 가득한 그림의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었다.
새로 생긴 지 두 달밖에 안 된 캠핑장은 너무 깨끗하고 한적했다. 아주머니 사장님은 연신 화장실이며 개수대, 이곳저곳을 매의 눈으로 치우기 바쁘셨는데, 캠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연신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네셨다. 시간을 정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매번 청소하시다가는 금방 지칠 텐데, 속으로 살짝 오지랖을 떨어보지만 이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이곳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다 같이 텐트를 치고 물건들을 정리하며 흘린 구슬땀이 어느새 시원한 가을바람에 씻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느긋한 오후를 즐긴다. 즐긴다는 건 어쩌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의식의 흐름대로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닐까. 늘 마음을 먹고, 할 일을 정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캠핑의 매력이다.
첫째 아이는 낼 모래 시험이라고 처음엔 집에 있는다고 했다. 내심 가고는 싶었는지, 집에 있는다고 공부를 하루종일 얼마나 많이 하겠냐고 매정하게 팩폭을 날리니 영어수업을 마치고 뒤늦게 합류했다.
수험생이 방문할지 어떻게 알았는지 너무 친절하게도 이 캠핑장에는 서재(?) 같은 휴게실이 건물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읽을 만한 책도 제법 있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이 서재에서 첫째는 조용하게 공부를 했다. 캠핑장에 왔는데, 도서관에 온 듯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도서관 같은 휴게실.
캠핑이 재밌다고 말하는 둘째 아이에게 머가 제일 재밌냐고 물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냥 불멍도 아니고 '파이어~'불멍이 제일 재밌단다.
캠핑장 주변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니 이젠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자연스레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어묵탕을 끓이고 공수해 온 장어를 구웠다.
둘째가 노래 부르던 파이어 불멍을 하려다 너무 파이팅이 넘쳤는지 불똥이 튀어 머리카락을 태울 뻔하고, 안 먹어보기는 해도 한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마시멜로를 구울 때에도 손이 익을 뻔했다. 그래도 따뜻한 온기가 좋아 점점 화로 앞으로 다가갔다. 따뜻한 온기가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얼마나 좋을까.이게 바로 캠핑의 꽃인데.
캠핑의 꽃.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캠핑장. 하늘엔 별이 박혀 있고, 집집마다 알알이 전구들이 수놓아진 텐트촌은 반짝이는 빛의 향연이다. 야간모드로 촬영하니 사진이 잘 나왔다. 눈에 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잠들기가 아쉬워 계속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꿈을 꾸고 난 뒤 잔상이 계속 남듯, 캠핑의 여운은 오래갔다.
가을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돌아온 후 코감기가 잔뜩 걸리고 말았다. 약을 먹어도 코가 너무 막혀 잘 수가 없고 목소리는 자동 에코모드로 바뀌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가을철이라 앞으로는 온도를 잘 챙겨서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