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트리플 A형이다.(요즘은 MBTI로 성격유형을 많이들 나누지만, 혈액형마다의 특성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수다쟁이는 결코 아니고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많이 했다.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4학년까지 이사를 4번을 했다. 1년마다 한 번씩 한 셈인데,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가 없다. 어렵사리 누군가 좀 친해졌다 싶으면 또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학교, 반, 아이들과 적응해야 했고, 아이들은 벌써 단짝 또는 그룹으로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그 사이에 끼어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좋지 않다. 나만 동 떨어져 있는 거 같고 어린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재밌는 것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있었다. 그래서 더 의기소침하고 주눅이 들어 소심한 성격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르겠다.(식구들이 올 A형이긴 하다. 웃음.) 물론 4학년 이후부터는 더 이상 전학을 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렸을 적 나의 성격이 이사로 인해 꽤 연관이 깊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결정한 거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 동네에 정착하고 안정되어서였을까. 어쨌든 얌전한 소녀이긴 했지만, 점점 친구관계를 넓혀나가더니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추억이 많다. 아직도 서로 연락하고 챙겨주며 지낸다. 평생을 함께하자며 만나서 수다를 떨 때면 영락없이 그 시절로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어릴 적 교회 친구들, 직장 동료들도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고 하는 걸 보면서 그 관계 속의 나를 들여다보니 성격이 조금씩 변해있었다. 지금은 할 말은 하는(?) 푼수 같은 아줌마가 다 되었지만.(남편은 내가 인싸란다. 피식. 그렇진 않은데.)
계속 듣다가 보니 어느 날 답답했다. 내 안에 무언가 꿈틀꿈틀 올라왔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알고 있는 것은 아는 척도 하고 싶었고, 눈에 띄어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도 있었던 거 같다. 주변 사람들을 재밌게 해 주고 웃게 하고 싶었다. 어쩌다가 한번 우스갯소리를 한마디 했는데, 주변 반응이 좋으면 희열을 느꼈다.
흥미진진한 나와 내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를 말해주고 싶었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며 공감해 주기를 바랐다.
'아, 이렇게 이야기할걸.'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언젠가 꼭 말해야지, 말해줘야지.'
속상한 일이 있어 안 좋았던 날, 기쁜 일이 생겨 자랑하고 싶은 날, 오지랖에 무언가 따스한 조언을 하고 싶었던 날, 할 말을 잘 못했던 날은 밤에 자꾸 생각이 맴돌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태생이 내성적인 성향인데, 확 180도 바뀌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듯 대화의 아쉬움이 많아져갔다.
그럼, 말 대신 글로 말하면 어떨까.
벌써 우린 문자, 메신저, sns를 통해 하고픈 이야기를 하고 서로 소통하고 있다. 말 대신 나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통신 매체가 없던 시절엔 편지를 많이 썼다. 문득 국군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친구들에게, 부모님께, 선생님께 등등 못다 한 이야기를 편지에 써서 전하면 속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성격상 말보다 글로 말하는 게 편했다.
요즘은 sns를 통해 내 이야기, 느낀 감정들을 글로 표현한다. 그 당사자가 읽어주고 들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그리고, 혹 기분이 안 좋을 때 글로 쏟아내면 비록 투정으로 시작했지만, 반성으로 끝맺게 된다. 글을 쓰고 난 후의 감정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수다쟁이가 되기로 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에서 이유미 작가는 말한다.
소설이 이보다 재미있을까요? 일기는 주인공이 나입니다. 주인공이 생생히 앞에 있는 이야기가 허구의 소설에 비할까요?
소설은 너무 어려워 엄두가 안 나고즉, 일기가 에세이라고 한다면, 못다 한 내 이야기를 수다쟁이가 되어서 이곳에 글로 하나씩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