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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엘 Jul 21. 2023

그 해 여름은

여름방학의 추억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무궁화호 기차에 올랐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4학년인 나와 여동생, 남동생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가다가 한껏 신이 나서 두리번거리며 기차들을 구경했다. 서울역에서 기찻길 따라 나란히 나란히 줄 서있는 빨강, 초록, 파랑, 주황 색색의 기차들을 보면서 "저건 무궁화호다, 어, 저건 비둘기호, 이건 통일호, 저쪽은 새마을호다" 어떤 기차인지 맞추기 놀이를 하며 기차를 타기도 전에 들떠 있었다.

서울역에 가 본 지가 너무 오래된 지금의 나는 선로 위에 복잡스럽게 나열되어 있는 긴 기차를 보면서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다. 옛스러운 감성은 지워지고 정형화된 최신식 기계들처럼 각 맞춰 지어져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것이 있다. 기차 승강장에 서 있으면 저 멀리서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칙칙폭폭 들어오는 모습. 지금으로 말하면 레트로 감성이 제대로다.


어린 나는 그렇게 초등학생 내내 여름방학이 되면 외가 식구들이 모여 살고 계신 대전으로 기차를 타고 설렘이 득한 여행을 했다. 그땐 학기 중에 별다른 나들이나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시절이어서 방학하면 외갓집 가는 것이 나에겐 큰 기쁨이자 일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손꼽아 기다리던 건 기차를 타는 일이었던 거 같다. 낭만이라는 단어는 1도 모르는 꼬맹이가 어렴풋이 느꼈다고 할까나.

 그 시절엔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의자를 돌릴 수가 있었다. KTX 두 번 타고 기차를 안 타본 지가 꽤 오래돼서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다섯 식구가 마주 볼 수 있게 등받이를 돌려서 하하 호호 삶은 계란에 음료수와 물을 마시며 내달리는 기차의 창 밖 풍경을 보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9남매 중 막내인 엄마 따라 매년 외가에 가면 이모네도, 외삼촌네도 사촌 오빠들이 많았다. 언니도 있고 막내 외삼촌 딸들인 나에게 동생들도 있었지만, 자주 같이 놀았던 건 오빠들이었다. 나와 동생은 집에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빠들이 우리를 데리고 이리저리 다니며 놀아주었다. 그 당시 놀이동산도 가고, 어른들과 다 같이 관광지도 다니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해 줄까 궁리하는 식구들이었다.


더 어릴 땐 기억이 안 나서 그런 건지, 4학년 여름방학 때의 추억이 내 머릿속엔 아직도 생생하다. 그 해 여름에는 방학 내내 넷째 이모네서 보냈다. 어떤 연유인지 엄마, 아빠 동생들은 기억 속에 없고 나만, 엄마 아빠 같은, 이모 이모부와 고등학생 언니,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그때 6학년이었네.)와 잠깐이 아니고 방학 동안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기억이 많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다른 기억은 흐릿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즐거웠던 일은 6학년 사촌 빠와 매일매일 놀았던 추억이다.

언니는 고등학생이라 방학중에도 학교에 갔었고, 두 초등학생은 하루종일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심심할 틈이 없었다. 이모부도 출근하시고 이모도 일을 하러 나가셨는지 집에는 안 계시고 오후 늦게 들어오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오롯이 사촌 오빠와 놀았던 기억만 뚜렷하다.(하하)

생각해 보면 매일 집에서 심심할 법도 한데, 쉴 틈 없이 오빠가 나를 데리고 놀아 주었던 거 같다. 너무 고맙게도 초딩 방학을 즐겁고 신나는 추억으로 만들어줬다. 그땐 그걸 알 리가 없고 그저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기에 바빴다.


그 시절 방학이면 방학탐구생활이라는 교재가 있었다.(기억하시나요?) 그게 숙제였는데, 그걸 같이 풀고 만들고 오려 붙이고 했던 거 같다.

한 번은, 오빠의 만들기 숙제인 나무젓가락으로 탑을 쌓아야 하는 게 있었는데 같이 해 보다가 내가 실수로 무너뜨려서 오빠는 화나고, 머라고 하니까 나는 삐지고.

내가 오빠의 물건을 망가뜨렸던 거 같은데 오히려 이모한테 오빠를 이르고, 이모는 알면서도 나를 감싸 주셨다. 한 달 넘게 이모네 집에 있으면서 정이 들고 그곳이 너무 푸근했다.


초등학교 시절 외갓집에서의 여름 방학은 추억 한켠에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커 가면서 가끔 꺼내어 웃으며 회자하는 기쁨이 있다.






엄마가 된 나는 방학시즌이 되어 "야호"를 외치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그러나 준비된 건 없다. 바지런한 엄마들은 방학 동안 먹어댈 식량부터 쟁여놓고 부족한 학습에 도움 되는 계획도 다 세워놓고, 체험학습이며, 여러 가지 커리큘럼을 짜 놓는다는데, 우린 신나게 놀 궁리만 다.

우선, 매년 그래도 1년에 두 번 방학 때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외갓집에 간다. 잠깐 짧게 다녀오는 경우도 많지만, 방학 때는 짧게는 일주일, 그 이상씩 지내다가 온다.

나도 마음의 고향인 친정이라 좋고 아이들도 친구처럼 놀아주는 이모가 있어 좋아라 한다.

또, 물놀이가 빠질 수 없으니까 워터파크도 예약되어 있고, 커다란 고래 입 사이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공원 물 놀이터도 한번 다녀와야 하고, 아빠 휴가에 맞추어 봉화 은어축제에 참가하고,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숙소도 예약했다. 버블쇼에 천문대 관람까지 줄줄이 일정이 꽉 차있다. 그러고 나면 개학이다. 게다가 여름방학이 짧아서 더 신바람이 난다. 나도 '야호'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책 읽기. 꾸준하게 다 같이 틈틈이 읽기로 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린 시절을 지나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아이들이 기억할 여름방학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매해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여름방학은 정말 즐거운 일들이 가득했다고 떠올렸으면 좋겠다.

내가 여름방학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추억으로 인해 좀 더 든든하게, 치열한 여름을 잘 버텼으면 좋겠다.




제목사진-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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