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어진 책 대화

주변인들의 취향

by arr

알바를 하다 빈틈이 생길 때 함께 일하는 이모에게 일상 대화를 얘기해보았다.


"아까 브레이크 타임에 위층에서 백은별 작가의 '시한부'책 오디오를 틀어놓고 잠깐 잠들었는데 얼핏 들어도 참 대단하더라고요. 중학생 나이에 소설을 완성하는 게 쉽진 않을 텐데 그렇죠? 나중에 한번 읽어보려고요"


"아 그런 도서가 있어요? 오.. 신기하네.. 전엔 딸이 추천하는 소설 같이 읽었는데 그 책은 처음 들어보네요.

나중에 페인트라는 책 읽어봐요. 부모를 직접 선택하는 내용인데 꽤 재밌어요.

최근엔 책 얘기를 할 상대가 없었는데 갑자기 생각나네"

"왜요? 하긴, 요즘은 미디어와 가까운 시대니까. 더 심화됐겠네요."

"그죠. 오히려 옆 동 언니랑 전화로 1시간 씩 얘기해요."

"예를 들면요?"

"그냥 그런 얘기 있잖아요. 딸래미 얘기, 아니면 아들이 남친이 생겼다더라. 어느 순간부터 옆에 여자 애가 생기더니 아파트 주차장에서 데이트를 하더라 ㅋㅋㅋ 진짜 사소한 얘기도 부풀리니까 더 드라마 같은 거죠."

"ㅋㅋㅋㅋ진짜 재밌겠네요! 저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시콜콜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나마 그분도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책 고르는 취향은 달라도 대화가 잘 통해요."


비 오는 저녁 알바 타임.

그날따라 거리엔 사람이 없었고 삼삼 할 때쯤 읽던 신문을 잠시 내려두고 책의 대한 대화를 했다.

내가 모르는 책을 이모가 알고 계셨고 미디어를 많이 찾는 2025년에 우연히 책을 읽는 독서가를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읽은 책을 읽은 이를 찾는 대화는 더더욱 어렵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을 말할 순간도 드물어서 그냥 말하고 싶었다.

"아 그 아까 얘기하신 페인트. 그 책 뭔가 궁금하네요. 아이들이 선택하는 부모라니.

전 읽으면서 궁금증이 계속 생기는 책이 재밌던데. 궁금한 게 생기면 붙이는 메모지에 생각 적어서 붙어두는 게 좋더라고요. 지금 하는 생각을 적어둬야 한 달 뒤에 다시 메모를 읽을 때 또 다른 내 모습이 보여서 신기해요."


"그럴 땐 한번 더 읽으면 되죠~근데 그것도 재밌겠네

ㅋㅋ"

"그죠?ㅋㅋ나중에 모아서 다이어리에 메모지만 다 붙여보려고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실없는 농담, 정치, 신문에 나온 사건사고에 관해 얘기하기도 한다.

이날의 수다거리는 책이었다.


훗날 작가를 꿈꿨던 고모께도 여쭤보았다.

"고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고모는 예전에 어떤 책 많이 보셨어요? 기억에 남는 책 있어요?"

"난 순정소설 많이 읽었지. 생각 나는 책은 너무 많은데.... 한강 작가 책 중에 '아기부처'라고 있는데 남자애가~너무 불쌍하더라.. 소년이 온다 그거는 너무 무서워서 못 봤어"

나와 다른 시대를 주로 겪어온 분의 말은 내겐 참 신선했다.

고모의 책 취향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난 다독 가는 아니기에 여태껏 읽어온 책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한강 작가의 책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도 못한 책으로 본집 책장에 꽂혀있다.


강릉에서도 책을 사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대형서점은 없었다.

대신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헌책방 두곳에서 6권을 뽑아왔다.


아름다운 서점 의 대표님은 책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정말 행복해하시는 것 같았다.

읽고 싶은 작가의 책을 여러번 추천하시길래 그 중 마음에 드는 3권을 사왔다.

헌책방의 대표님은 한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 오랫동안 모아오신 책의 권수도 가늠이 안된다.

책 모으는 행위 자체는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헌책의 냄새와 이름모를 사람을 거쳐온 오랜 도서들의 감촉이 참 좋기 때문이다.

강릉에 알바를 하러 오지 않았다면 이모와 고모와 책 얘기도 나누지 못했을 거다.

인생의 길이를 나보다 깊게 살아온 선배와의 대화는 들을 때마다 생각할 거리가 항상 늘곤 한다.


내가 해보지 못한 태국여행의 일화나, 내가 모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이날의 대화 주제 역시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라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이것 만으로도 가치 있는 3개월이 채워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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