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좋은 회사를 떠났을까

비표준 인간의 회사 적응 실패 기록

by 임동현

그 곳을 퇴사한지 1년이 넘었다. 문득 그 곳의 안부가 궁금해서 사람인에 들어가 연매출을 봤다. 2023년 175억에서 2024년 181억 정도 됐더라. 왠지 모르게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역시 성장하지 못했군." 그래도 그 곳은 꽤 안정적이다. 현상 유지에 가깝긴 하지만 적어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진 않았고, 크진 않아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나고 있다. 런웨이를 걱정할 단계는 전혀 아니다. 게다가 꽤 유명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 자체가 크진 않아도 소위 '한가닥'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기업들 부럽지 않다.




회사의 점심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점심시간은 무려 1시간 30분이었다. 게다가 점심 값도 줬다. 입사 후 개인용 법인카드를 발급 받으면 그걸로 점심을 먹고서 ERP에 올려두면 점심 값이 계좌로 들어왔다. 게다가 자율 출퇴근제. 9시간만 채우고 퇴근하면 됐었다. 좋은 회사였다. 나는 1시간 30분이라는 점심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주로 근처 파리바게뜨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노트북으로 개인 작업을 했다. 글을 쓰거나.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곤 했다.


분위기도 꽤 좋았다. 좋았다기보다 자유롭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회의가 참 많았다. 개인적으로 회의가 많은 건 싫었다. 잦은 회의 때문에 업무 흐름이 끊기거나, 소통이 필요한 사람이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리를 비우고 있어도 '그러려니' 하는 그런 분위기. 사내 캔틴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혹은 주변 카페에서 회사 사람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들은 1:1 미팅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저 나와서 커피 한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걸로 뭐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거 같다. 아니면 그저 몰랐을 수도. 특히 매주 특정 요일 오전은 더 편했다. 대표님이 회사에 방문하시는 날. 모든 리더는 그 회의에 참석했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나갔다가 오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런 게 다 괜찮았다. 당연하게도 나 역시 그 시간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분명히 좋은 직장이었다. 퇴사할 당시에 아주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조언처럼 조금만 참고 다녀볼걸. 더 적응해 볼걸.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떠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난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싫은 것도, 회사가 싫은 것도 아니었다.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았다. 나에게 맡겨진 일은 온라인 자사몰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는데, 내 생각이 완고하긴 했다. '지금까지 했던 방식이 먹히지 않아서 자사몰이 성장하지 못했으니, 이제부터 다른 방식을 시도 해야 합니다.'라는 주장을 했다. 그래서 시도하고자 한 게 데이터 커머스였다.




당시 그곳에서는 CAFE24 기반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위해 기본적으로 관리하고 있어야 할 지표를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연도별 매출, 상품 원가, 비용은 기록되고 있었는데, 최종 지표인 매출을 움직일 세부 지표에 대한 관리가 없었다. 나는 매출이라는 결과를 움직이는 세부 지표-DAU/MAU, 신규회원 수, 회원당 창출 매출, 광고비- 같은 것들을 하나씩 트래킹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실행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나는 '갑자기 등장해서 귀찮은 일을 벌이는 존재'로 인식됐다. 기존 인원들 입장에서 보자면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나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나는 의도치 않게 트러블을 일으켰다. 광고비와 광고 효율을 트래킹한다는 게 광고팀에게는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던 거 같다. 내가 그걸로 뭐라 할 입장도 아니고, 권한도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나는 광고팀으로부터 다소 날 서 있는 메시지를 자주 받아야만 했다.


의외로 상품기획팀에도 밉보였다. 신제품이 나왔는데, 정황상 프로모션으로 큰 매출이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현실적인 목표 매출액을 말했고, 왜 그렇게 목표 매출이 낮냐는 소리를 들었다. 화끈하게 1,500만 원쯤 목표를 잡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참고로 광고비 예산은 200만 원이었다. 최종 매출은 240만 원으로 마감했었다. 그 제품은 현재 소비기한 4개월 남은 임박 상품이 되어 말도 안 되는 할인율에 전시되어 있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이게 맞아?"라는 질문이 가득했다. 다행히 누구에게도 묻진 않았다. 난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걸.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 알고는 있는데 진짜 내 감정은 솔직히 모르겠다.


한 선배님은 내가 퇴사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시면서 "그래도 조금 더 있어 보지", "다른 사람 의견도 많이 들어보고, 때론 안 해본 방향으로도 해보며 경험 쌓아보길 바라"라는 말을 해주셨다. 조금 뼈 아픈 말이긴 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안주하든, 성장하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직장인 관점에서 보자면 나보다 그 선배가 더 옳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내가 선택한 다른 회사는 성장 가도를 달렸지만, 그 속에서 나는 불안정했고 회사의 성장이 내 인생의 안정을 담보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순응하고 사는 게 더 낫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직장인으로서 충실했고, 나보다 더 어른이라서 그곳에 남아있는 거다. 나는 아직 어려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거고.


나에게 중요한 건 뭘까? 나는 왜 정착하지 못했을까.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내가 떠난 그 회사는 성장하지 못했고, 그 제품은 부진 재고의 결말을 맞이했다. 서두에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반대인 거 같다. 나는 승리감보다 패배감을 느끼고 있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는데. 왜 내 커리어는 갈수록 꼬여가는 것 같을까? 애매한 개인 사업과 애매한 직장인. 이렇게 투 트랙을 유지하는 건 옳은 일일까? 내가 옳았다고 느끼면서도, 옳은 선택이 항상 내 삶을 안정시켜주진 않는다는 거. 받아들이기 좀 힘들다. 그 모순 속에서 여전히 나는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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