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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ug 07. 2023

아기의 만행을 참는 비법

아기에 대해 글을 쓰면 좋은 점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상상한다면, 어쩌면 기자의 고압적인 태도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종종 어떤 기자는 그렇게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많은 기자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대부분은 취재원에게 조금은 ‘굽실굽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취재원이 누구냐에 따라 이것도 문제가 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어느 정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자는 취재원의 말이나 정보가 없으면 기사를 완성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대로만 기사를 쓸 수가 없고, 취재원의 정보나 제보로 기사가 시작되기도 하고, 특정 취재원 때문에 원래 생각했던 기사의 주제가 완전히 틀어지기도 한다.


취재원들은 대부분 생업으로 매우 바쁘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기자는 자신의 기사 때문에 취재원의 시간을 뺏는 형상이 되곤 한다. 원칙적으로 기자는 취재원에게 금품을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기자는 결국 소중한 남의 시간과 생각을 착취(?) 해서 기사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어떤 기자는 ‘멋진 우리 지면에 실어주는데 말이야’ 하고 이것을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고.


이런 프로세스 때문에 종종 어떤 취재원은 “왜 기자들은 인터뷰나 정보를 요청하고 대가를 제공하지 않느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취재비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기자가 취재원에게 금품을 제공할 수 없고, 특히 사례비를 주고 인터뷰를 조작하는 등의 윤리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일부 간담회나 좌담회를 꾸려 교통비를 제공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취재원에게 사례를 제공하는 일은 드물다. (최근에는 협업의 형식으로 얼마간의 사례비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듣기는 했다.)


이런 과정 때문에 기자는 보통 취재원에게 시간과 정보를 얻은 것에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 경우 그것이 일종의 ‘굽실굽실’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였는데, 사실 이 태도 때문에 한 선배에게 혼난 적도 있을 정도다. 어려운 일이지만 균형을 갖춘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여하튼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기 이야기로 가보겠다. 아기에 대해 글을 쓰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자동적으로 아기에 대한 기록이 쌓이기 때문에 좋다.


두 번째로 좋은 점은 아기가 가끔 진상을 부리거나 심하게 떼를 쓸 때도 ‘아, 이걸 글 소재로 써야지’라는 생각이 들면 나름 감정 컨트롤(?)이 잘 된다는 점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글감을 준 취재원(?)이 조금 불편한 태도를 보여도 잘 참아지는 과정과도 같다. 새로운 글감을 주셨는데 제가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하는 마음이다.


자라자라자라


어쩌면 이 같은 마음가짐은 ’ 거참 엄마라는 사람이 애기한테 마냥 너그러워야지, 글감을 준다고 너그럽고, 안 주면 안 참아지나?‘라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방어를 해보자면, 이런 생각은 나에게 감정을 컨트롤하는 일종의 논리 게임 같은 것이다. 아기의 떼를 참기 위해 내 나름대로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 이걸로 글을 써야지’라고 날 위로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꼭 아기에 대한 일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라는 것은 이래서 인생에서 꼭 필요한 행위인 것 같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근심이나 걱정, 더 나아가 인생에서 재앙과 같은 일도 그것을 글쓰기 소재로 삼으면 단기간 위로가 될 뿐 아니라 그 소재 덕분에 찬란한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길이 펼쳐지기도 한다.


최근 브런치에서 인기를 끄는 브런치북의 소재만 봐도 자신의 투병기라든가 이혼이나 파혼 등을 다룬 것들이 많다. 물론 애초에 근심이나 걱정, 재앙 등이 없고 그에 관련한 글도 쓰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살이라는 것이 근심과 걱정과 재앙이 없을 수는 없기에.


더 나아가 종종 예술이나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굴곡진 삶이나 결핍이 없어 오히려 그것을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이래서 예술병이 무서운 것이다.) 나 같으면 그냥 굴곡이 없고 예술성이나 글쓰기 소재를 덜 얻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굴곡이 있을 때 그 일을 소재삼아 무언가를 내놓는 일까지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 일을 극복하려는 일종의 몸부림이기도 하니.




오늘 갑자기 분유를 제대로 안 먹고 40ml씩 끊어먹으며, 겨우 밤 12시에 잠을 잔 아기의 만행(?)을 참고 글 한 조각을 써본다. 소재를 준 아기님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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