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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30. 2023

'쓰고 싶은 걸 쓴다'는 허황됨

현실의 현실

1.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프리랜서의 삶을 꿈꿀 것이다. 나 역시 프리랜서의 삶을 상상한 적이 많다.


2.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전업 작가의 삶을 꿈꿀 것이다. 나 역시 전업 작가의 삶을 상상하는 시간이 많다.


1과 2를 합쳐, 프리랜서-전업 작가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 핵심은 역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우선 유명하지 않은 글쓴이인 내가 살 수 있는 프리랜서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기사 쓰기로 돈을 버는 삶을 8년 동안 살아오면서, 종종 외고를 쓰는 경우가 있다. 프리랜서가 된다면 아마 외고를 통해 수입 대부분을 벌어야 할 것이다. 외고나 강연 등이 주수입이 되는 삶일 텐데, 이 외고라는 것이 본업과 비교해 '프리'하지는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우선 외고의 경우, 내가 과거에 쓴 기사를 보고 자신들의 기관에 필요한 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방향은 협의가 가능하지만 어쨌든 글을 청탁하는 입장에서 원하는 글이 있고, 나는 그것을 맞춰 써야 한다. 그 니즈를 제대로 맞출수록 외고를 잘 쓰는 이가 된다. 마감은 회사와 마찬가지로 정해져 있다. 회사 데스크의 경우 대부분 오랫동안 나와 알고 지낸 선배이기에 그 캐릭터의 특징을 알고 협의를 해나갈 수도 있지만 외고의 경우 내가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주 유명한 저자가 되면 그쪽에서 맞춰주겠지만..


오히려 본업인 취재와 기사 쓰기의 경우 기본적으로 나의 출입처나 취재 분야는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매일 발제를 만들고 무슨 글을 쓸지 꾸려나가는 주체는 나다. 물론 외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체크하면서 따라가야 하지만, 기획 기사나 발제 기사 등 내가 쓰고 싶은 주제의 기사를 써나갈 때도 있다. 또한 기사를 쓰면서 현장을 누비는 것은 나이기에, 데스크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더라도 현장의 상황과 나의 취재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기사 방향으로 설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프리랜서' 역시 회사에 속해 기사를 쓰는 것만큼 무언가에 맞추면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인 것은 똑같다.


다만 그 지겨운 출퇴근을 하지 않고, 일하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이 들어올까 안 들어올까 전전긍긍해야 하고 수입 역시 들쭉날쭉할 것이다.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일 때문에 마감이 몰리면 오히려 회사에 다닐 때보다 내 스케줄을 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오히려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안 좋은 상황이 된다. 안정지향적이고 예측가능한 루틴 한 삶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것은 치명적이다. 물론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프리랜서 글쓰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것보다 그저 '출퇴근을 제거한 회사원'의 삶에 가깝다고 상상된다.




육아휴직을 하고 지난 몇 달간, 운이 좋게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휴직 기간 동안 정기적인 수입 -고용 보험에서 주는 육아 휴직 급여- 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나가지 않고도 급여를 받는, 어쩌면 인생에서 매우 드문 기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1년 6개월로 매우 한정적이다. 이 때문에 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써댈 수 있었다.


그러나 휴직 9개월 차가 접어든 지금, 벌써 쓰고 싶은 글을 이렇게 써대기만 해도 되는지 우려가 생긴다. 내 마음에는 이미 '돈 안 되는 글'에 대한 경시가 가득 차있다. 차선으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책이라도 되는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을 휘발적으로 써대는 것은 책이 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뭔갈 쓰려면 단단한 기획 안에서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그렇다고 각 잡고 무언가를 써보려고 하면 조회수가 신경이 쓰인다. 나름 공들여 쓴 글은 조회수가 처참하다. 포털 메인에 올라가지 못하는 글은 도대체 누가 보는 것이고, 더구나 공들여 쓴 글이라고 해서 책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서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고민, 너무나 익숙하다. 내가 회사에서 하던 고민이다.


회사를 다닐 때도 나는 똑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매일 휘발적이고 파편적인 기사만 쓸까, 무언가 묵직한 이야기를 던지는 기획은 왜 하지 못할까.


그렇다고 기획 기사를 쓰면 도대체 누가 이걸 읽기나 하나 싶은 것이다. 또 나 혼자 심각했구나 싶다.


물론 내가 잘 썼다면 묵직한 주제이면서도 주목도 받을 수 있었겠지. 결국은 내가 못했던 거지. 내 실력이 모자란 것이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하루살이처럼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사를 발제하게 된다. 그렇게 기사를 쓰다 보면 어떤 날은 만족스럽기도, 어떤 날은 아쉽기도 하다. 그런 날들이 쌓여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점점 기사 쓰기에 지쳐가게 되고 사회 현상에도 호기심을 잃게 된다.




더 이상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 고민이 깊어질 때 브런치를 시작했다. 기사 쓰기와는 다른 글쓰기를 하게 됐고 내 안에서 퍼 나르고 싶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솟았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다시 또 회사에서 했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는 쓰고 싶은 것을 쓰면서 산다는 것은 허황된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좋은 풍경을 보면서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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