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다 몸이 더 예민하다면

정신보다 몸의 명령을 떠받들고 산다

by 정민경

어릴 적부터 나는 '내가 예민한가, 둔감한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했다.


누군가는 나를 매우 무던한 성격이라 평가하고 누군가는 나를 매우 예민한 성격이라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보다도 나 자신을 잘 모르는 시기였기에 쉽사리 고민이 풀리지 않았다.


심리학이나 정신과 관련 콘텐츠를 즐겨보다 보니, 예민한 사람이 남에게 무던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민한 사람은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안 보이지만 말투나 표정 등에서 노력을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예민한 사람을 무던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다.


그러나 똑같이 예민한 사람은 갈등상황을 피하려는 그 보이지 않는 노력들(흔들리는 동공, 표정이나 말투 변화, 민감한 주제가 나왔을 때 자연스럽게 화제 돌리기,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화법 등)을 캐치하니 예민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노력이 안 보이는 사람은 나를 무던한 사람으로 평가했고, 자신도 그만큼 예민하거나 관찰력이 좋은 사람들은 나의 노력을 캐치해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고민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예민함에 대해 또 고민했다. 밖에서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저 사람들처럼 예민하다고..?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 더 예민함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다.


고민의 결과, <예민한 사람>의 분류를 나눌 수 있었다. 정신이 예민한 타입, 몸이 예민한 타입이 있는 것 같다.


쉽게 사회적으로 말하는 '예민한 사람'은 정신적 예민함에 몰려있었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상처를 잘 받거나 하는. 그런 대표적인 이미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은 오히려 넘어갈 수 있었다. 갈등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 피로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정신보다 몸이 예민한 타입'이었다.


정신은 둔탁하고 윤리의식은 낮은 편이었지만, 직감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몸이 예민하다고 해야 하나. 정신보다 몸이 반응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나를 둔감하다고 (정신적으로), 어떤 이는 나를 예민하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이제야 고민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전의 고민이 나와 타인의 경계에서 벌어진 차이만 인식했다면, 이제는 내 몸과 내 정신의 경계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있음까지 인식한 것이다.


나는 둔탁한 정신에 비해 몸이 너무 예민해서 뚜그덕 거리는 타입인 것이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난 이 정도 말은 그냥 흘러 넘길 수 있어', '이 정도 상황은 이겨낼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면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다거나, 만성 장염이 도지거나, 공황과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 몸은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주사를 맞을 때 순간적으로 쓰러지는) 미주신경성실신이나, 지하철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겪는 쓰러짐(공황 증상), 지겨운 과민성대장증후군과 주기적인 장염 증상들도 ‘정신보다 예민한 신체’의 특징이다. 물론 이런 증상들이 중학생 때부터 있어서 저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잘 알아서 큰 무리는 없지만 방심하면 또 공황 증세와 장염이 한꺼번에 올 때가 있어서 종종 다시 내 몸을 체크해 보게 된다.




그래서 예민한 나의 장, 즉 몸을 위해 노력하는 것의 일환이 집밥이다. 특히 혼자 집밥을 먹을 때는 양도 적게, 무조건 속이 편한 메뉴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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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술과 우엉조림과 김치, 완두콩 프리타타와 아보카도에 참기름.


그래서 혼자 밥을 먹을 때는 한 그릇 집밥을 즐겨 먹는다. 차리기에도 편하고 양도 조절되고, 보기에도 예쁘며 설거지도 간편하니까.


밥 한술을 덜고 집에 있는 적당한 밑반찬들을 적당히 놓는다. 아보카도도 까서 반절을 잘라 참기름과 깨를 올린다.


완두콩 프리타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책인 생강 작가의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레시피를 참고했다. 그 레시피 그대로는 아니지만 맛있고 멋지다.


완두콩을 삶아 둔 뒤 감자를 얇게 썰어둔다. 이때 집에 있는 적당한 채소 - 토마토, 호박, 파프리카, 가지 등- 를 적당히 잘라 넣어도 된다. 감자를 스타우브나 주물팬 위에 깔고 계란 3~4개를 풀어 붓는다. 그 위에 삶은 완두콩을 넣고 20분~30분 정도 익히면 끝이다. 모양도 예쁘고 만들기도 의외로 쉬워서 자주 만드는 요리다. 야채를 많이 넣은 계란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비슷한 재료로 더 간단한 버전도 있다. 그냥 감자를 찌고, 계란도 삶아서 한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이다. 레시피랄 것도 없는 이런 그릇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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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감자에 치즈를 올리고 삶을 계란을 옆에 두고, 오렌지와 병아리콩을 곁들여 한그릇으로.


정신보다 예민한 내 몸은 내 정신이 얼마나 바보 같고 답답하게 느껴질까.


이번 주말에도 토요일 가족과의 갈등상황을 겪고 나자 일요일 저녁부터 장이 꼬여왔다. 안 그래도 요새 하루에 커피를 2잔씩 마시고, 갈등상황을 피하려고 무리를 했고, 갈등상황까지 마주하니 몸에 바로 탈이 난 것이다. 목요일이 된 오늘에서야 겨우 컨디션이 회복됐다.


최근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배달음식을 먹고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몸이 더 힘들어지게 된 것 같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정답은 속 편한 집밥밖에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예민한 몸이 버거울 때가 많긴 하지만, 미덥지 못한 정신보다 확실한 정지 신호를 알려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나는 정신보다 몸의 명령을 떠받들고 산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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