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좋은 점이 복합된 목표여야 실행력이 올라간다
집밥을 처음으로 자주 해 먹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취업 후 몇 년이 지난 20대 후반이었다. 그때 나는 몇 년간 일 때문에 잦은 외부 미팅과 이어진 술자리로 인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내 몸은 고맙게도 (?) 살이 찌자마자 바로 나쁜 신호를 보내왔다. 작은 수술이었지만 어쨌든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오를 일이 생겼다. 수술을 하고 하고 나서 식이 요법이 필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밥을 해 먹게 되었고,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딱히 요리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서 슬쩍 몇 번 봤었던, 한 그릇 샐러드 음식을 자주 해 먹었다. 샐러드라고 해봤자 그냥 채소 몇 개를 씻어놓고 계란 프라이와 집에 있는 치즈나 과일 등을 곁들이는 식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 고기를 구워 곁들이거나.
그렇게 집밥을 해 먹고 당시에 1년 동안 7kg을 감량했다. 이제야 기존의 나의 체중을 다시 찾았고 확실히 속도 편하고 체력이 올라갔다. 역시 몸과 마음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시 다이어트에 푹 빠졌다.
그래서 20대 후반 내가 쓴 기사들 중에는 다이어트에 관한 기사들도 몇 가지가 있다.
당시 살을 뺐을 때 매우 큰 도움을 받았던 '다노'라는 어플의 대표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온라인 다이어트 어플 이야기를 미디어 업계 이야기와 연결 지어 기사를 썼었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880
당시 다이어트 열풍이 한번 죽고 '바디 포지티브'라는 개념이 유행을 하고 있었고, '코르셋'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다이어트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 인터뷰에도 이런 대목을 넣었었다.
최근에는 다이어트 열풍 자체에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사랑하자’는 식의 캠페인이 확대되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것은 자칫하면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다노의 대표는 당시 이렇게 답했다.
“다노 역시 고민이 많다. 매년 조금씩 바뀌는 다이어트 트렌드 안에서 중심을 잘 잡고, 비전과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한다. 결국은 내가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 ‘지금 있는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라고만 말하는 것 역시 강요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맞다.”
나 역시 다이어트에 푹 빠져있어 집밥 해 먹는 걸 매우 좋아했지만, 이러한 외부세계의 철학들(?) 때문에 다이어트에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집밥 먹으면서 다이어트하라고!!'라는 식의 단순한 전도(?)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도 필요했다. 그래서 이러한 고민을 풀 수 있는 책을 읽고 기사를 썼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814
이런 고민에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김주현, 책세상, 2009)는 이 고민 역시 여성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압박이라고 설명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의 외모를 놓고 그 혹은 그녀의 성별 정치학의 진정성을 단죄하는 경향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미적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또 다른 미적 압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금욕주의는 ‘여성이 외모에 관심을 갖고 멋을 내면 남성적 시선의 대상이 될 뿐이니 외모 꾸미기에 무관심해져라’라는 명령을 처방으로 제시한다.(본문 116p) 이 압박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이중의 족쇄가 된다.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라는 사회의 명령을 듣고 살지만 다이어트를 하거나 화장을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가끔은 “너는 왜 (페미니스트라면서) 화장하고 다이어트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되기도 한다.
당시와는 생각도, 경험도 많이 달라진 나지만 이 문구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의 몸을 대하라는 결론이 나온다.
누군가 다이어트하라고 해서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다이어트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해야 나를 설득해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살이 찌면 바로 장과 무릎 등 몸이 아파왔고, 이때문에 더해지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은 물론 일하는 것에 매우 큰 지장이 있었다. 내 몸이 아픈데, 외부에서 '왜 살을 빼?'하는 이야기 때문에 '그래 그냥 빼지말자'고 방치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된다는 담론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이 생각은 마찬가지이며, 다이어트를 안 해도 몸에 무리가 안 가고 정신도 건강한 사람은 상관없겠지만 솔직히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라 예상된다.
그렇게 어떻게 보면 단순할 것도 같은, 그러나 나에겐 복잡했던 다이어트를 위한 집밥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이든 생각이 너무 많아 뭘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돌고 돌아 시작을 인정한다. 안 좋은 습관 같기도 하지만, 결국 어렵게 시작한 만큼 나를 설득하는 작업은 끝났기에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잘하긴 한다.
요즘 다시 집밥을 집밥에 집밥을 해 먹는 빈도가 굉장히 늘었는데, 역시 아기를 낳고 난 후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기를 낳은 지 9개월이 지났는데 사실 이미 출산 전 몸무게와 비슷하게 살을 빼긴 했다.
이미 한 번 다이어트를 성공한 경험도 가지고 있고, 내가 하는 다이어트라는 것이 연예인들처럼 엄청나게 날씬한 것을 목표로 둔 것은 아니기에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긴 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역시 그 중심엔 집밥이 있다.
게다가 집밥을 먹으면 다이어트는 물론이고 배달이나 외식을 줄이게 되면서 절약을 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어떠한 목표를 실행할 때 단 한 가지의 좋은 점만 바라보고서는 그 목표를 꾸준히 실행하기 어려운 것 같다.
욕심쟁이인 나에겐 더더욱 그렇다.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복합되어 있는 목표여야 실행력이 올라간다.
어떤 날은 '다이어트를 위해 집밥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어떤 날은 '절약을 위해 집밥을 먹어야지', 어떤 날은 '요리하고 싶으니까 집밥 해 먹어야지'라고 실행 이유를 돌려가며 하나의 목표를 꾸준히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 하는 짠순이는 집밥 생활에 안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