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된장찌개의 즐거움

같은 요리여도 레시피가 다르지

by 정민경

나는 회사에 다닐 때도 혼밥을 좋아했다. 나에게 오전 9시부터 시작되어 오후 6시에 끝나는 노동시간은 너무 길다. 나는 어떤 책 제목처럼 4시간만 일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보니 하루 4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4시간이더라.. 대충격) 10시부터 2~3시까지만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하튼 그렇게 길고 긴 노동시간 속 1시간의 휴게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직업 특성상 점심 미팅 역시 노동에 포함되기에 혼밥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다. 그래서 미팅이 잡히지 않는 날이거나, 갑자기 미팅이 취소된 날이라거나, 외근인데 현장이 2~3시에 있는 경우. 혼밥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맛집을 찾아다녔다.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거나, 혹은 7500원짜리 한식뷔페에 가서 먹고 싶은 반찬을 먹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사무실에 들어가곤 했다.


을지로로 외근이 있을 때 꼭 들렸던 그라츠 과자점.




혼밥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육아휴직을 했다고 해서 그대로 혼밥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보통 대부분의 육아인은 거의 하루종일 아기와 붙어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내 집에 방문한다고 하면 좋아라 할 것이다. 그 방문인이 커피라도 사들고 온다고 하면 남편이 출근한 8시30분 가량부터 두근두근 점심밥을 차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가 오기 1시간 전부터 기다린 것은 꽤 양반인 셈이다.


친구가 못 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점심시간이 여유가 있는 날이면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의 회사와 우리 집이 매우 가까웠기에 남편은 종종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면 나는 1시간 동안이라도 아기를 돌보는 의무에서 딱 한걸음 거리를 두고, 거실에서 주방으로 가 밥을 차렸다. 한걸음이라도 조금의 숨통이 트이는 거리였다.


직장 점심시간과 달리 육아인의 점심시간은 보통 혼자라, 그렇게라도 다른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매일 누군가와 점심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타 다른 육아인의 점심처럼 나 역시 점심에 혼밥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직장을 다닐 때와 달리 혼밥을 한다는 것만으로 즐거워지진 않지만, 가끔 혼밥을 해서 즐거울 때가 있다.


누군가를 위한 레시피가 아닌, 그저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유 때문이다.


남편이 점심을 집에서 먹는 날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된장찌개이기에, 자주 된장찌개를 끓인다.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 레시피는 물을 조금 넣고, 된장과 쌈장을 1:1 비율로 넣은 후 표고버섯과 양파, 감자, 파, 고추를 넣고 마지막에 고춧가루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남편은 배추나 무를 넣어 시원하게 끓인 된장찌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두부도 별로 안 좋아하고, 청국장도 안 좋아한다. 게다가 국에 밥을 말아 눅진해진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 나와 반대다.


남편이 오지 않는 날, 혼밥 확정인 날, 나는 그 누군가도 의식하지 않은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다.


된장과 쌈장을 넣는 것은 같지만 청국장도 좀 넣는다. 배추와 무도 넣는다. 표고버섯이 아닌 팽이버섯을 듬뿍 넣고 두부 한 모를 때려 넣다시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밥도 두 세 숟갈 넣어 먹는다. 고춧가루도 팍팍 뿌린다.


두부를 거의 한모 때려박은 된장찌개.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도 즐겁지만, 이렇게 두부와 배추를 팍팍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는 일 역시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남편과 같이 먹을 때도 그냥 네 맘대로 요리하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굉장히 남편을 위한 요리를 해주는 사람처럼 글을 쓰긴 했지만 사실 된장찌개를 제외한 90%의 요리는 내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하지만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그 누군가를 아예 생각 안 하고 밥을 하긴 어렵다.


혼자서는 그냥 냄비에 밥을 넣어 먹는 걸 좋아하지만 누군가와 먹을 때는 예쁜 그릇에 담아 준다. 나와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아, 이 사람은 그냥 반찬통에 반찬을 먹는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 서다. 나아가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예쁘게 먹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길 바라 서다. 실상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일이 없거나 이렇게 집밥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을 않는 날은 반찬은 커녕 그냥 하나의 냄비로 해결한다.


이렇게 같은 메뉴를 만든다고 해도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와 나 혼자 먹을 때 레시피는 많이 다르다.

역시 아직 나는 혼밥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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