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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15. 2023

비교의 덫과 열등감이라는 원동력

원동력을 외부에서 찾기를 그만두자

얼마 전 하루키와 이동진의 공통점(?)을 발견해 글을 썼었다. 이 둘은 자신의 업계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고 있으며 매우 일을 많이 하는 성실한 사람들인데, 둘 다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를 포기한 듯 보였다.


물론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은 있겠지만,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인맥을 쌓거나 사교 모임 등에 나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하루키는 스스로 문단에 관심이 없다고 글을 썼고, 이동진은 스스로 자신의 인간관계는 망했다고 이야기한다.


https://brunch.co.kr/@after6min/196


종종 어떤 만남을 하고 나면 참 찝찝한 경우가 있다. 실컷 다른 사람들은 뭘 했더라, 누구는 저랬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오는 만남이 특히 그렇다. 남을 비교하기 좋아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앞에 앉은 사람도 은근히 남과 비교한다. 모임이 끝나면 나 역시 다른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왔다는 걸 느끼게 되고, 찝찝함이 남게 된다.


혼자 있을 때는 내 삶에 꽤 만족하고 살고 있었는데, 이런 모임을 하고 나면 나의 부족함에 우울해진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걸려있는 비교의 덫에 나도 빠져버린다. 그래서 그 우울함을 또 남과 비교해 없애버리려 한다. ‘아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사람보다 ~한 점은 낫잖아?’라는 식으로 말이다. 비교로 인해 나빠진 기분을 비교로 해결하려는 속셈이다.


이 구렁텅이가 지겨워 ‘역시 현자들처럼 사람을 안 만나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반면 이렇게 비교를 당하고 온 날이면 우울함도 느끼지만 동시에 나도 모를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 대놓고 안될 것 같다고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대화를 곱씹으며 ’ 그래 두고 보자 ‘ 식의 감정을 품는다. 그러면서 새벽에 갑자기 벌떡 깨어 내가 추진하고 있는 것들에 가속을 밟기도 한다.


나는 잠을 줄이고 뭔가를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이런 감정을 느끼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까지 무언갈 만지작 거린다. 그동안 내가 하려고 했다가 못했던 일, 생각만 하고 안 하던 일 등을 후루룩 해치워버린다. 평상시에 이렇게 했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비교의 늪’에 빠지지 말라는 말들에 갸우뚱하게 될 때도 있다. 사람이 우월감만큼 열등감도 느껴야 발전하게 되지 않나? 최자의 가사였나, 열등감이 자신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이다.



이렇게 비교의 늪에 빠진 나를 합리화하고 있자니 현자들과 나의 차이점을 알 것 같다. 인간관계가 망했는데도 자신들의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은, 저런 열등감이나 오기 등의 원동력이 없어도 자기 안에서 이미 원동력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원동력, 좋은 지식을 습득하고 싶다는 원동력 등등.


왜 나는 원동력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할까? 이미 그럴 시기는 지나지 않았을까? 비교의 덫을 합리화하기는 그만두고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원동력으로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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