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 아기 키우는 엄마가 입시 공부법 책을 읽는 이유
요즘 영유아 육아서를 읽다가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연령을 좀 높여보았다. 초~중등 연령의 육아서를 읽다 보니 그 특징은 육아서라기보다 '입시서'였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아이를 잘 키웠다는 증거 중 하나가 좋은 학벌이나 직업을 말하는 것이 많으니 그럴 것이다. 오죽하면 오은영 선생님도 '대한민국에서 육아의 대부분의 문제는 공부 때문'이라면서 공부에 대한 책을 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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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서는 나와 관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달리, 디테일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았다. 요즘 입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초~중등 때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을 미리 보면서 오히려 '초등 때 이런 걸 가르치려면 영유아 때 이러저러한 것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유용했다. 이 부분은 추후 따로 정리해 보겠다.
그렇게 교육실용서를 읽다 보니, 밀리의 서재 알고리즘을 타고 사법고시를 치른 변호사의 공부법을 다룬 이지훈 작가의 <공부, 이래도 안되면 포기하세요>까지 읽게 되었다. 이지훈 변호사는 유튜브 <아는 변호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기도 했고, 몇 번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는 짤방을 통해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긴 하는데, 읽다 보면 왜 그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지도 확실히 알게 된다.
이 책은 흔한 공부법 책, 동기부여 자기 계발 책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나름 유니크함을 가지고 있다. 책이 유니크하게 느껴진 이유를 크게 정리해 보자면 두 가지다.
첫째, 고전 책 이야기가 많다.
이 책은 이지훈 변호사의 공부법 이야기와 고전인 <월든>, 각종 동양 고전들을 인용하며 흘러간다. 가끔은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인 <월든> 리뷰처럼 읽히기도 할 정도로 월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마 저자의 인생책인 듯하다.
그리고 책 속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인데, 월든은 사실 매우 재미없는 책이고 읽기 어려운 책인데 저자의 해석을 통해 저자만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월든은 나 역시 두세 번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저자의 은사님이 월든을 꼼꼼히 해석해 주셔서 저자 역시 제대로 된 독서를 하게 됐다고 한다. 월든 마니아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월든을 해석해 주는 재미가 있고, 월든 외에도 주역, 논어 등 동양 고전에 대한 해석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런 점이 다른 자기 계발 책들과는 차별점을 가진다.
두 번째, 머리가 좋은 영재 류의 공부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공부법을 다룬다.
책의 첫 장은 이지훈 변호사 자신이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 변호사는 숙명여대 경제학과를 입학했다가 고려대학교 법학과로 편입을 하고, 2~3년 동안 사법시험을 공부한 후 군법무관으로 근무했다. 또한 사법연수원 변호사 시보를 중국에서 했으며 중국 칭화대학교로 석사 유학을 했고 군법무관을 그만두고 유튜브를 시작하기도 했다. 사실 군법무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시보가 무언지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는데 업계에서는 별로 없는 선례를 남겼던 모양이다.
저자는 이러한 선택들을 할 때 스스로 정말 원해서 했기 때문에 남들이 "쟤는 왜 저렇게 하지?"라는 시선을 보낼 때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좀 천박한 이야기긴 하지만 학부가 명문대인 사람의 공부법책을 보면 "원래 머리가 좋았겠지"라고 생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의 공부법 이야기는 평범한 학벌을 가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였다.
저자는 '결과를 내는 공부'를 위해서 7가지 조건을 꼽는다.
동기, 환경, 시간, 정리, 체력, 멘탈, 고독
우선 첫 번째 조건인 동기에 대해서는 이 책 전반에 계속 나오는 말이 있는데 <주역>의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말이다.
인생에서 무언가 어려움에 봉착했잖아요? 그것은 지금 상황이 궁하다는 의미입니다. 궁한 상황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변하는 것입니다. 궁하다는 것은 변할 때가 된 것입니다. 변해야 한다는 시그널입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결국 성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장하기 위해서 궁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입니다. 변하십시오. 성장하십시오. 변하면 통합니다. 그리고 통하면 오래갑니다. 변하지 않으면 통할 수 없고 결국 오래갈 수 없습니다.
이지훈 <공부, 이래도 안되면 포기하세요>
그렇기에 저자는 변하는 것은 곧 성장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나 역시 "넌 왜 그렇게 변했어?"라는 말이 욕이 아니라 성장했다는 말로 들리는 사람이다. 나에게 "넌 왜 그렇게 변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성장할 동안 그 자신은 성장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이기에, 그의 말에 동의가 됐다.
저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일이 최고의 동기부여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자신 내면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거의 모든 자기 계발서가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말을 하고 있긴 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월든을 인용한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저) 중에서 -
그래서 공부를 하기 전에 반드시 ‘이 공부를 내가 왜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게 확실해졌다면, 그 욕망을 인정하고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찾을 때, 정말 처절하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사기 위해서,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잘난 척하고 싶어서, 누군가가 미워서. 이런 욕망들을 탐욕과 사치, 시기와 질투로 표현하고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내 안의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좋은 에너지로 연결하십시오.
자기기만에 빠져 힘들다고 하소연하지 말고 내가 뜻이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이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최근에도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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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에 쓴 동기부여의 부분은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공부 모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자는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장수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다. 이 변호사가 신림동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법학 지식이 뛰어난 장수생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그런 장수생들을 보면서 "아니 저렇게까지 많이 아는데 왜 시험에 붙지 못할까, 도대체 얼마나 알아야 시험에 붙는 걸까" 좌절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장수생들처럼 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즉, 지식과 시험 합격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합격에 필요한 공부를 하라
여러분의 시험공부 목표가 ‘합격’이라면 합격에 필요한 공부를 하십시오. 절대 학자가 되려는 사람처럼 공부를 하면 안 됩니다. 학자의 공부법은 호기심과 탐구가 중요한 요소로,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험공부법에서 이런 요소는 해악입니다. 호기심과 탐구와 창의는 여러분을 장수생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학자처럼 공부할 것이면 차라리 사법고시를 하지 말고 교수를 하면 된다는 식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다른 공부법 책과 차별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많은 공부법 책, 특히 아이의 공부를 위해 공부법책을 읽는 학부모를 위한 책들은 굉장히 본질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아이의 호기심을 키워주고 관심사를 북돋워 교육시키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동기부여'를 시켜주는 방법이다. 물론 학부모는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고, 실제로 공부하는 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을 생각해 보면 나는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많아 동기부여는 잘되는 아이였지만, 실제로 어떤 대학이 좋은지, 어떤 학과들이 있는지 혹은 내 장단점을 분석해 더 좋은 대학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실질적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공부 스킬도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평범한 수준에 머물렀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고 동기부여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결과를 낼 수 있을까?'고민하는 지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동기부여 부분과 실제로 결과를 내는 수험생 모드의 공부법을 따로 다루고 있는 점이 도움이 됐다.
즉, 동기부여는 학자 모드로, 시험은 수험생 모드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나는 공부도 학자 모드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장수생의 특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험생 모드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저렇게 하는 게 진짜 공부인가?'같은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이후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많은 육아서들은 '본질'만을 강조하면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결과가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득한다.
결과가 없으면 '나 자신의 길', 즉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내 갈길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가 안 나오면 내 자신의 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결과가 있어야 나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이 붙고, 그 자신감으로 진짜 자신의 길이 무언지 또 생각할 수 있으며,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어야 노력을 하고, 변하고, 결국 또 성과를 내는 선순환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선택에 결과가 없으면 여러분은 진짜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그런 상태라면 여러분은 각자의 고유한 삶은 언감생심 숨통을 조이는 사회의 규칙에 철저히 순응한 채 남은 삶을 연명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시도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내린 결정에 좋은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실로 엄청납니다.
여러분은 한때의 본성에 따라 내린 결정을 평생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조용히 살걸’, ‘그냥 조직에서 시키는 대로 살걸’이라고 되뇌면서 말입니다. 책임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이런 설명은 사실 아이들에게 '과정만큼 결과도 중요해'라는 차가운 현실을 설득할 때 유용한 논리가 될 것 같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어쩌면 이지훈 변호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 아닌가 싶다. 저자는 학구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다. 인간 본성에 대해 기만하지 않고 솔직하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법을 공부했으며, 특히 군법관으로 근무한 환경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쉽게 말해 보수적인 면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구에 공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둘째 형인 이반이 ‘저기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기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 눈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뻥 차버릴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수많은 육아서는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왜냐면 착한 이야기, 올바른 이야기, 당연히 그렇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만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보면 그렇게만 풀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요즘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이 사실을 알 것이다.
저자는 자신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선택이 먼저 제대로 되어야 힘든 '수험생 모드'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는 사실 '책'에서 쓰이기 어렵다. 글, 특히 책이 되는 글은 자신의 생각 중 가장 멋진 것을 취하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 책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쓰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이 나에게는 유니크하게 다가왔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추상적으로는 충분히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내 일상으로 들어오는 순간, 범인에 불과한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뒤늦게 철저하게 이기적인 행동을 해보지만 내 인생은 이미 치명타를 입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혼자서 깊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십시오. 내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장 이기적인 나를 만나야 됩니다. 여러분의 자아가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보인다면 하지 마십시오. 그 이유가 굉장히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사악하다고 하더라도 자아가 싫다고 하는 것을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야’,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지’, ‘내가 아니면 누가 도와주겠어’라는 생각으로 선택하시면 안 됩니다.
정확히 육아서로 분류되는 책은 아니었지만, "아이에게 본질적이고 학자적인 공부법만을 강조하는 게 과연 옳을까?"라고 고민이 되었던 나에게 나름 해결책을 제시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