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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r 20. 2024

여전히 오은영이 인기 있는 이유

부모가 금쪽이임을 알려준다

오은영의 육아 코칭은 왜 이 정도로까지 유명해졌을까? 물론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자극적인 아이들의 모습이나 결혼 생활 등 연출에 대한 부분과 몇 가지 단정적인 코칭 등은 비판이 따르기도 하지만 가장 영향력있는 육아 코치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글이 그의 책리뷰여서가 아니라, 자주 생각하는 것인데 나는 TV에서보다 책으로 만나는 오은영샘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TV에서의 그의 코칭은 가끔 나오는 비판 기사에서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험해보일 때가 없지 않다. 물론 어떠한 연출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책은 그러한 느낌이없고 정말 좋은 정보들과 통찰이 담겨있다.


그래도 TV에서든 책에서든 기본적으로 그의 코칭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까지 코칭이 되는, 즉 어른을 위한 정신 분석이 되는 프로그램이기에 이 정도로까지 오래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금쪽이 프로그램 리뷰를 보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있는데 '부모가 금쪽이네'라는 말이다.


물론 선천적 장애나 신체적 문제 때문에 금쪽이가 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성격적 결함이나 조급함 등이 아이가 엇나간 배경이 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장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탓이 있다는 평이다. 그만큼 오은영의 육아 코칭은 '어른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육아서의 공통된 습성이기도 하지만 오은영의 코칭은 부모의 말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분석해 어른 속 내면 아이를 들여다보면서 유명해졌다. 그렇기에 어른을 상담하는 '금쪽 상담소'(어른판 금쪽이) 프로그램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


꼭 오은영의 육아 코칭만 그런 것은 아니고, 유명한 육아서 중 '푸름 아빠 거울 육아' 같은 책을 보면 이 같은 특성이 두드러진다. 만약 부모의 내면 아이 치유에 관한 책이 궁금하면 이 책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육아서를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결국 내가 고쳐져야 아이에게 이상한 나의 결핍이나 욕구를 투영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런 책들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이런 연재물도 적고 있는 것이겠지.


이 글에서는 육아서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오은영 샘의 책 가운데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리뷰를 해보겠다.


대한민국의 많은 육아문제가 결국은 공부로 인한 부모와 아이의 갈등이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하시는데,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금쪽이를 보면 대부분 부모가 금쪽이인 경우가 많았다.


오은영이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


이 책은 여러 가지 양육 꿀팁들도 많지만 오은영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는 프롤로그부터 인상적이다. 자신은 어릴 때 허약하고 작은 아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6살 위 오빠가 있어서 어깨너머로 공부를 구경하다가 책을 많이 읽고 한글을 빨리 깨쳤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아 인정받는 경험을 하면서 '책을 읽고 숙제를 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었다'라고 한다.


그에게 공부는 할수록 자존감이 높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어떤 것이었다.


이 책을 모두 통괄하는 핵심이 이 구절인 것 같다. 보통 공부를 시킬 때 부모들은 아이에게 지적을 하고 실망을 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기보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한다. 9개를 맞아도 1개 틀린 것을 지적하고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려서부터 공부와 관련된 경험을 줄 때 자존감을 높여주고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이 이 책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핵심이다.


오은영은 아들이 공부를 왜 해야 되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네가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자기 조절이 필요한데, 그 자기 조절을 배우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공부다. 배움은 여러 번 실패하고 여러 번 틀려봐야 제대로 배운다. 그러니 모르거나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답 역시 공부에 대해 틀린 것을 나무라는 보통 부모의 모습과 상반된다. 보통 부모, 즉 공부를 싫어하게 만드는 부모는 아이가 틀린 것을 타박한다. 그러나 틀린 것은 곧 아이가 무언갈 배우는 과정이 됐으므로 타박할 필요가 없다.


틀리고, 실패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유명한 자기 계발서 '마인드셋'에 나오는 가치관과 비슷하다.





사회성 발달이 공부력에 미치는 영향


공부에 관한 육아서를 보면서, 어렸을 적 '왜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했을까'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보통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성과 공부는 관련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공부를 아주 잘하고 뛰어난 사람은 사회성은 발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똑똑한 애들은 혼자 공부만 하지, 친구와 함께 어울리진 않으니 말이다. 천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도 골방에 틀여 박힌 모습이다. 그러나 이 챕터의 이 부분을 읽고 나면 머리를 땡 하고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사회성이 발달해야 '공부 동기'가 생긴다고 한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도 공부의 동기에 들어간다. 관심은 재미가 아니라 고려이다.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지만 내가 지식을 습득하고 무엇을 해서 그들과 어떤 형태로 주고받으며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고 그것이 공부의 흔들리지 않는 동기가 된다.

이런 것이 없는 아이들은 공부를 자율적으로 하지 못한다. 사회성이 잘 발달된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하는 것도, 모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모두 사회성이다.
(오은영 저,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45p)


이는 어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학생 때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은 사람은 조별 발표에서 황당하게 참여를 하지 않거나 사라지기 일쑤다.


나 역시 우울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일도 대충 하고, '몰라~나중에 어떻게 되겠지'하면서 미팅도 대충 해치운 적이 있다. 학생 때에도 그나마 겨우겨우 내가 공부한 이유가 '공부 못하는 애로 보이기 싫어서'였다. 나에게 사회성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하


수업에 집중하고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에는 단순히 이것을 배워야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옆의 아이도 선생님을 잘 보고 있으니까 나도 잘 봐야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면 선생님의 기분이 어떨까? 다른 친구들도 숙제를 해오니까 나도 해가야지, 이왕이면 멋지게 발표해야지 하는 등의 주변과 세상에 대한 사회적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오은영 저,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46p)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부모나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은 충성심(Royalty)이다.
(오은영 저,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66p)



재롱잔치라는 모욕


내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는 중간 부분의 재롱잔치 이야기다. 재롱잔치를 가려면 엄마아빠가 보통 회사 연차를 내는 식으로 참석해야 하는데, 이때 아이가 쭈뼛거리거나 주인공이 아닌 모습을 보면 아이에게 실망을 하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특히 아이의 아빠들은 시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 많기에 '어디 잘하나 보자'라는 태도를 가지게 되고, 아이를 평가하고 비교한다는데 정말 빵 터진 대목이었다. 그 모습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재롱잔치를 하는 '아이의 속사정'에 나오는 말이 너무나 웃기다.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재롱잔치는 잘해야 본전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잘 따라 하지 못해서 선생님과 엄마가 맨날 지적을 한다. 재롱잔치가 끝나니까 엄마는 '집에선 잘하더니 왜 이렇게 못했어?'라고 말한다. 날 괴롭히는 재롱잔치가 정말 싫다. (오은영 저,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75p)


사실 육아서를 읽는 이유가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함도 있지만, 이런 구절을 만날 때는 정말 나를 위한 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꼬인 점을 풀어주고 어루만져 준다. 이렇게 30대 중반인 나도 육아서를 읽으면서 내면 아이를 들춰보고, 힐링을 얻게 된다. 내 아이에게 이 상처를 또 반복하지 말아야지 하는 배움은 사실 두 번째 소득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지독한 몸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은 몸치가 아니다. 친구들과 클럽에 가거나 페스티벌에 갈 때는 정말 아무렇게나 춤을 춰대서 친구들이 놀랄 정도였다. (몸치여서 놀란 거였니?) 아무튼 지금은 집에서도 춤도 만들어대고 기분 좋으면 춤을 춰대지만 어렸을 때 재롱잔치나 장기자랑 시간이 정말 너무나 끔찍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의 속사정'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아무리 연습해도 스텝은 꼬였고, 주인공은커녕 지나가는 행인 10과 같은 역조차도 맡지 못하는 것이 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이런 걸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무언가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을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냥 뚝딱하고 잘될 줄 알았던 거다.


게다가 공부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장기자랑 등 '내가 원하지 않는 일'에 대해 연습을 하는 것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뚝딱거렸고 그 뚝딱임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더더 무대를 피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더 것이다.


편한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거나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막춤도 잘 추고 까불기도 엄청 까부는 나인데, 이렇게 누군가 나를 보고 있고 '재롱'을 부려야 하는 상황에는 대처를 잘하지 못했달까.


지금 생각해 봐도 '재롱'이라는 것이 좀 모욕적이다. 왜 내가 누군갈 위해 '재롱'을 부려야 하나. 어린이이기 때문에 어른에게 재롱을 부려야 하나? 어렸을 적에도 막연하게 이 재롱이라는 것에 뭔가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 말고 수많은 어린이가 지금도 그럴 것 같다.


공부를 주제로 한 이 책에서 대부분의 파트에서는 엄마 마음에 공감이 갔지만, 이 파트에서는 어린이의 마음에 크게 공감이 갔다. 이 부분은 여전히 나의 내면 아이가 살아있는 부분인 것 같다.


재롱잔치에 갈 때는 '오늘 아이랑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결과나 성취 위주로 생각할수록 '에이~'하고 실망하게 된다. 아이와 보낸 시간이 적은 부모일수록 실망도 크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서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부모는 실망도 덜하다. 아이가 뭔가 해낸 성취의 결과물에 대한 지적과 약간의 부정적인 비난은 어쩌면 재롱잔치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실수를 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럴 때는 '오늘 즐거웠니?'라고만 물어보면 된다.
(오은영 저,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77p)




이 마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것인가?


그 외에도 이 책에는 문해력이 낮은 아이, 셈을 못하는 아이, 돈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아이 등 아이 공부로 인한 부모들의 걱정에 굉장히 디테일한 조언을 담고 있다. 사실 아이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속사정은 부모는 놀이를 통해서도 계속 '가르치고' 싶은 욕망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것 같고, 수많은 육아서들 중에서도 구별되는 책이라 여겨진다.


또한 이 책을 포함한 수많은 육아서는 항상 말한다. 아이에게 내 욕망을 투영하지 말라고. 공부에 대한 욕망도 따지고 보면 내 욕망이니. 차라리 그 시간에 나를 계발하는 게 나은 것 같다. 물론 아이에게 내 욕망을 아예 투영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것 같고, 어느정도 투영해서 공부도 잘 시킨다면 베스트겠지만… 실천이 어려운 지점이긴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아이의 공부에 불만족스러울 때, 다시 한번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안에 아이의 인생과 무관하게 내 욕심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 공부와 양육의 목적은 같다. 공부의 목적은 두뇌를 발달시키고, 삶을 살아가는데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를 갖춰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함이다.

양육의 목적 또한 튼튼하고 똑똑하고 따뜻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 아이 스스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이 공부에 대해 자꾸만 조급해지는 이 마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것인가?
(오은영 저,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383p)


육아를 하며 원하지 않는 상황이 올 때마다 물어볼 것이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 왔나?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것인가?


덧. 오은영 샘에 대한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한 것 같은가? 맨 앞에도 썼지만 오은영 샘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의 문제점은 기사로도 여러번 지적한 적이 있다.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길.

상담 프로그램 전성시대, ‘금쪽이’는 정말 괜찮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163

방송용 솔루션 한계 드러낸 MBC ‘결혼지옥’ 논란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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