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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r 27. 2024

아이 역시 날 평가할 정도로 크겠지

세상의 잣대를 삭제한 사랑이란 가능한가

요새 애들은 초딩만 되어도 '엄마는 일 안 해?' 한대


돌이 조금 안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놓으니, 일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복직이 3개월 남았으니 적응을 위해 지금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어린이집은 어차피 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 내가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어린이집은 보낼 것이다. 어린이집에 가있는 시간은 많이 줄어들겠지만.


이렇게 요즘 나의 최고의 고민은 '일'이다. 이전에 일을 한다고 해서 희생되는 것은 내 시간과 에너지 정도였다. 이제는 아기와 보내는 시간도 일의 기회비용이 됐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자주 하게 되는 이야기 역시 일이나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에 대한 것이다. 만약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면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로또가 된다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처럼.


남편: "나는 돈이 진짜 많아도 일을 계속할 것 같아. 회사를 다니지 않더라도 어쨌든 어떤 형태의 일은 하겠지. 세계에서 부자로 꼽히는 사람들도 다 일을 하잖아.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일하잖아? (일론 머스크나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 같다.) 돈 때문에 일을 안 해도 되면 오히려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깐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 "맞아.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어떤 형태의 일은 하긴 하겠지. 난 한 달에 300~400만 원 정도 나오면 회사는 바로 그만둘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아기도 한두 명 더 낳고, 아기 보면서 운동도 다니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도 한두 개 배우고 아이들도 더 정성스럽게 보면서..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바쁘지 않을까? 글도 지금처럼 쓰면서."


남편: "그런데 요새 애들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엄마는 일 안 해?' 이런 식으로 말한대. 능력 있는 엄마들 자랑하는 애들도 많다고 하고. 네가 쓰는 글도, 나가서 여러 사람도 만나고 일하면서 쓰면 더 넓고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에세이를 써도, 본업이 있고 에세이를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다. 만약 딸아기가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옆집 엄마는 잘 나가는 대기업에 다니거나 의사나 변호사 등등등이라면 나와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딸도 사람인데, 내가 엄마라고 해서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도 아이에게 공부 등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는 어렵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실망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고 학원을 보내보기도 할 것이다. 아이도 똑같지 않을까? 당연히 아이도 엄마가 세상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가 보내는 비교의 눈초리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고, '너 때문에 내가 커리어를 희생했는데' 같은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 하나 자신이 없었다.


‘너 때문에’ 같은 말을 너에게 붙이고 싶진 않아




아이 역시 나를 세상의 눈으로 평가할 날이 오겠지


오은영 선생님의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에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아이가 부모를 좋아해야지 공부를 하고, 중학생 이상은 부모를 존경해야 공부를 한다"는 식의 구절이 있다.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부모나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은 충성심(Royalty)이라는 것이다. 꼭 공부뿐 아니라 생활습관 지도 등에 있어서도 부모를 존경해야 부모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말이다.


(오은영 샘의 이 책을 리뷰한 글에 관심이 있으시면 링크로.)

https://brunch.co.kr/@after6min/234


부모를 존경할 때, 그 존경의 이유가 꼭 세상적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또 물었다.


나: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머니들이 거의 다 일을 하지 않으셨잖아. 그럼에도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아들딸들이 많지 않아? 꼭 어떤 멋진 명함을 가지고 일을 해야 존경하는 건 아니잖아. 어머니의 성품을 보고 존경하는 자식들도 많잖아."


남편: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 당시에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지금보다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일을 하지 않았고. 우리 아기가 컸을 때를 생각하면 그때는 또 많은 어머니들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을까?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있고 다른 일이 하고 싶어서라면 모르겠지만,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 일을 그만둔 것이 막 존경스러워 보이진 않을 것 같아. 돈이 있어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열정이 있는 부모를 더 존경할 것 같아."


하.. 남편의 말이 맞는 것처럼 들려서 또 나는 끝나지 않는 고민에 빠진다.


나 역시 하나의 에세이를 읽어도 다른 본업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언젠가 친구가 '전업 작가'의 글에서는 세상을 보는 관점에서 한계가 느껴진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같은 글을 쓰더라도 기자라는 명함이 있을 때 더 다양한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차피 글을 쓸 것이라면 내가 궁금한 분야의 명사에게 인터뷰도 청할 수 있는, 기자라는 명함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내가 10년 전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그 원점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글 쓰면서 살 거라면, 돈 받고 쓰자!


이렇게 단기적으로 일과 복직에 대한 고민은 일단락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찝찝하게 남은 의문이 있다.


가족이어도, 세상의 눈을 걷어내기란 어려운 거겠지?라는 질문. 




냉철하게 피드백해 주는 부모 vs 정서적 베이스캠프로서의 부모


얼마 전 읽은 인터뷰집이 떠오른다. 이슬아의 창작 동료 인터뷰집 '창작과 농담'이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밴드 새 소년의 황소윤. 이 책은 인터뷰 하나하나 할 말이 참 많은 책인데, 어쨌든 지금 인용하고 싶은 부분은 이슬아와 황소윤이 서로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슬아는 황소윤에게 '피드백'에 대해 묻는다. 생애 첫 피드백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모님의 영향을 묻는 것이다.


이슬아: "어렸을 때 만든 음악을 부모님께 겨우 들려주셨다면서요. 어린 황소윤이 만든 음악을 듣고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하셨나요?"


황소윤: "저희 부모님은 굉장히 냉철하신 편이에요. 없는 말 안 하고 항상 디테일한 피드백을 주세요. 요즘도 그러시고요. 방송 나온 거나 공연 영상들을 보시고 세심하게 체크해서 말해주시죠. '거기서 음정 나갔더라', '그 부분에선 이렇게 말했어야 된다'하고."


황소윤은 자신의 부모님이 굉장히 예리하다고 전했다. 예리한 피드백에 가끔은 피곤해지지만, 대부분은 좋은 피드백이라고. 그러면서 부모님을 '유일하게 제가 믿을 수 있는 관객들'이었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나를 잘 알고 냉철하게 피드백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 반응에 이슬아는 놀라며 자신의 부모님과 매우 달랐다고 한다. 이슬아는 자신의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지적을 하려고 하면 못하게 했고,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은 지적을 받으므로 '부모 당신들은 나의 유일한 베이스캠프이고 나의 정서적 안식처니까 나에게 예리해지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굉장히 열심히 읽은 흔적.




세상의 잣대를 삭제한 사랑이란 가능한가


나는 굳이 따지면 황소윤의 부모님과 같은 부모님에게서 자랐다. 내가 무얼 하든 예뻐해 주고 지지해 준다는 느낌보다, 내가 세상에 나갈 때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지 충고와 지적을 받으며 자랐다. 기자가 된 후에도 엄마는 종종 내 기사의 오타와 비문을 지적해 주신다.


아마 나 역시 아이에게 완전한 베이스캠프가 되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예리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주기는 힘들 것 같다. 나나 남편 둘 다 T 성향이 강하고 '진짜 성장'을 위해서라면 쓴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우쭈쭈'해줄 수 있지만 진짜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할 수 없다. 그저 '우쭈쭈'만 해주는 일은 그 사람을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지적을 많이 받지 않고, 정서적 베이스캠프로 두고 자랐다는, 멋지게 자란 이슬아 작가를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지적을 해야지만 잘 자라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정서적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예리한 부모로서 피드백을 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지금의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내 아이는 나의 피드백을 황소윤처럼 받아들일까 이슬아처럼 받아들일까? 내 아이는 어떤 부모를 바랄까?


그리고, 세상의 잣대를 삭제한 사랑이란 가능한가?


이 질문에 나는 아직은 '아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라는 작은 그릇의 사람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세상의 잣대를 완전히 삭제해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랑은 계속하더라도 무언가 성취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아있을 것 같다.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다.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세상의 잣대를 무시한다는 게 나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엄청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아쉬움이 많은데... 그렇기에 아이에게도 세상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주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남들이 보지못하는 부분까지 살펴볼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당연히 아이에게 정서적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것이지만, 조금은 꿈틀거리는 베이스캠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너무 안락한 소파가 아니라, 조금은 허리를 피도록 딱딱하게 설계된 소파 같은 베이스캠프 말이다.


나 역시 아이가 나에게 들이대는 세상의 잣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잣대에 서운해지지 말아야지 미리 다짐해 본다. 가끔 네가 들이대는 세상의 잣대에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너를 통해 더 멋진 사람이 될 동기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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