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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Feb 14. 2024

아기 한복의 멋짐을 몰랐던 어른

어린이라는 멋진 세계를 이제야 알게 된 사람

이벤트에 둔감한 인간은 조금 재미가 없다


아기를 낳고 첫 명절을 지냈다. 남편이 명절 때 입힐 한복을 사라고 했지만 나는 '한번 입고 못 입을 걸 왜 사라고 하지?'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어렸을 적 한복을 입고 명절에 친척집에 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까먹고 있었다. 


나는 워낙 이벤트에 둔감한 여인이다. 둔감한 여인을 아내로 둔 남편은 명절 전 부랴부랴, 직접 당근마켓으로 중고 한복을 사 왔다.


급하게 산 한복은 낡아있었다. 그 한복을 입고 아기는 할머니네 집에 가서 세배 비슷한 고개 숙이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아기가 한복을 입고 세뱃돈을 꽉 쥐는 모습에 가족들이 한바탕 웃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진작 예쁜 한복을 사놓을 걸'이라고 후회가 됐다. 이벤트에 둔감한 여인으로 살아온 것도 후회가 되었다. 둔감한 여인의 생은 어쩌면 둔감함의 크기만큼 재미도 없을 뻔했다. 아빠라도 이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아기에게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찍은 사진을 올리려고 SNS를 켜니, 수많은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세뱃돈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 아기들은 이미 어린이집에서 한복을 입혀 이벤트를 치렀기 때문에 한복을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 아기는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아서 한복이 없었던 것이다.


아기 한복을 사는 것이 유난스러운 게 아니었구나..! 다들 이렇게 이벤트를 열심히 챙기면서 살고 있었구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복 드레스(?)를 입고 세뱃돈 받은 아기.




어린이의 멋짐을 몰랐던 내가 불쌍해


아기들이 한복을 입은 피드를 살펴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무 귀여운 아가들이 뽀짝 한 한복을 입고 절 같지도 않은 몸짓을 하고 있었다.


아기를 낳고 변한 것 중 하나가 우리 아기뿐 아니라 다른 아기들이 모두 예뻐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아기 낳기 전, 어린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른이었다. '애들이 뭐가 귀여워? 대부분 별로 이쁘지도 않고, 못된 것 같고, 시끄러운데.'라고 생각했다. ㅜㅜ 문장을 쓰면서도 어린이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는 모든 아이들이 정말 예뻐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멋진 존재였다. 어린이의 멋짐을 몰랐던, 멋없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어린이 명절 선행학습 중. 우리집 사람이라면 화투는 필수여


 



어린이와 잘 지내는 어른이 되고 싶은 소망


최근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었다. 이슬아 작가는 어린이의 멋짐을 매우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은 이슬아 작가가 2014년부터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선생님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글의 제목이 '나의 어린 스승들에 관하여'이다. 그는 어떻게 어린이를 낳기도 전에 어린이의 멋짐을 빨리 알았을까 신기할 뿐이다.


이 책은 당연히 '육아서'로 분류되지 않지만, 어린이들을 다루는 매우 유용한 스킬들을 담고 있다. 이슬아 글쓰기 선생님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들은 우리 아기 연령은 아니고 초~중학생들이다.


아기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어린이에게 시큰둥한 어른이었음을 후회하고, 어린이들에게도 친절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그러나 어린이와 너무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어떻게 어린이를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 어린이들도 나와 있으면 좀 뻘쭘해하는 것 같았다.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던 경험을 담은 이슬아의 책 부지런한 사랑.


이 책에 나와있는 어린이들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이다.


무언가에 대해 쓰고 싶은 대로 쓰자고 제안하면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혹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기억은 나는데 쓰기 싫다고도 말했다. 좋은 이야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내주어야만 그들도 소중한 것을 나에게 내주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먼저 털어놓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 어리석은 경험을 한두 개 말하다 보면 그 자리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은 날 보며 웃었다. 그때 질문을 건네야 했다. 너희는 어떠냐고.
-책 '부지런한 사랑' 가운데


글을 쓰기 싫어하고 말로만 하고 싶은 아이를 다루는 방법도 적혀있다. 일단 아이의 말을 열게 한 후,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말하지 말고 글로 써줘. 중요한 이야기를 말로만 하면 힘이 약해지거든. 마무리는 꼭 글에서 지어줘."

나도 이런 그의 스킬을 배웠다가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글쓰기를 직접 지도해보고 싶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책 '부지런한 사랑' 가운데


책 중반부에 삽입된 '여수 글방'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쓴 편지들도 감동적이다. 이 편지는 내가 만난 좋은 어른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아직 그같이 어린이와 잘 지내는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지만, 그가 어린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곱씹으면서 어린이들에게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제라도 어린이를 사랑하게 된 어른이 되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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