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증명되지 않아도, 책육아
나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로....(진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도서관이며 나의 버킷리스트는 세계의 멋진 도서관들을 여행해 보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식탁에서든 어디서든 책을 놓지 않아서 엄마에게 "책 좀 놓고 밥 먹어!"라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맨날 밥을 먹으면서 책을 봐서 밥풀이 여기저기 묻어서 찐득찐득해 버린 책이 엄청 많았다. (쓰면서도 더러워..)
우리 엄마도 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 7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책에 관한 팟캐스트를 운영하실 정도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하는 엄마와 가장 행복한 기억도 함께 도서관을 가서 책을 읽고, 도서관 앞 돈가스 집에서 돈가스나 동태탕 같은 걸 먹고 또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각자의 책을 읽은 기억이다.
당시에는 책육아 같은 말이 없었지만, 엄마도 나름 책육아를 하신 게 아닌가 싶다.
남편이랑 결혼한 많은 이유 중에 하나도 '같이 각자의 책 읽기', '서로 책 읽고 대화하기'가 잘되는 남자여서인 것도 있다.
육아휴직을 한 지금 가장 좋은 점도 아기가 잘 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만약 백수가 되어도 도서관만 다니면서 책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이만큼 말했으면 내가 책 좋아하는 건 어느 정도 설명이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책육아'라는 육아법을 들었을 때 너무나 자신이 있었고, 웬만한 사람들보다 책육아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같이 책 보면서 육아하면 아기가 잘 큰다고? 개꿀인데?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정도다. (나는 동화책도 좋아한다)
한편, 그렇게 키워서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운다 한들, '겨우 내가 되는 거 아닐까?';;;(김애란 '비행운'에서 파생된 유행어이다. 사실 이 대사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별로 좋아하는 대사는 아니지만 너무 찰떡이긴 하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정말 정말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 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4년 제이긴 하지만 엄청 좋은 명문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것도 아니다. 책육아를 강조하는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공부를 안 해도 학습실력이 저절로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국어 성적은 영어나 수학에 비해 항상 좋긴 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엄청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책육아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오히려 내 주변에 책만 읽고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선비' 타입의 사람들을 보면서 '저건 그냥 현실도피 아님? 저렇게 책만 읽으면 어쩌자는 거야'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굶어 죽어가는 선비를 보는 와이프의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책은 그렇게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책육아에 대한 육아서 한 권을 추천하겠다.
그 유명한 서안정 작가의 '결과가 증명하는 20년 책육아의 기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책을 주야장천 읽어도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모두 좋은 학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서안정 작가의 책을 읽으면, 책육아를 뛰어넘어 '와 이 사람은 진짜 아기를 열심히 키우는구나', '이 정도면 책육아라는 수단이 아니어도 아이가 잘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책육아에 큰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인 것 같다.
책육아가 아니어도 아기에 대한 정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아기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줄지, 아기를 열심히 키우는 엄마의 디테일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큰 참고가 됐다. 또한 실제로 아기와 책으로 놀아줄 때 팁이 많아서 정말 좋은 실용서라고 생각된다.
이를 넘어 책과 함께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책과 함께 관계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찐하게 가르쳐 준다.
우선 이 책은 책육아가 학업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설득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세 딸을 키운 엄마인데 세 아이 모두 사교육 없이 영재로 키운 것으로 유명해졌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첫딸이 한의대, 둘째 딸이 포항공대, 셋째 딸이 고려대에 재학 중이라고 한다.)
서안정 작가는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폭력을 당한 적이 많았고, 폭력을 당한 경험과 자신의 낮은 학벌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의 아이만큼은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고 목표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육아서 3000권을 넘게 읽고 육아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어쩌면 육아서 3000권을 읽은 엄마의 노하우가 전해지기에 더 유용한 것 같다.
나는 우선 이렇게 작가 아기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는 목표를 대놓고 이야기하고, 그 목표에 대한 자신의 이유를 밝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아기를 키우면 다른 아기를 키우는 이웃들과 손쉽게 부모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난 우리 아기가 그렇게... 좋은 대학 나오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면 돼'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주 아기부터 이것저것 비싼 사교육을 하는 걸 보면 그 말이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유는, 이 책의 제목처럼 아무리 열심히 키워도 '결과는 증명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력했는데 결과는 증명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기가.
그럼에도 나는 일단 욕망은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혼동을 줄 수 있다. 결과는 증명되지 않더라도 욕망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노력은 해봐야 한다.
물론 똑똑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아이를 쥐 잡듯이 잡고 공부 머리도 없는데 괴롭히는 것은 문제다.
많은 이들은 어떤 욕망을 가지는 것과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잘못 행하는 것'을 헷갈려하기 때문에 욕망 자체를 죄악시한다. 욕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잘못 실행하는 것이 문제다.
우선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그를 위한 노력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육아서를 읽고 노력하고,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와 함께 즐겁게 독후활동을 해나가면서 아이의 미래를 키워줄 수 있다면 무엇이 나쁜가.
이 책은 신생아 때부터 학령기까지 읽힐만한 구체적인 전집 이름이나 책의 이름도 다 나와있고, 어떤 식으로 독후활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디테일하게 나와있다. 독후활동 사진만 봐도 작가가 아기를 정말 정성껏 키웠다는 게 느껴진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보면 책육아라는 것이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주야장천 책을 읽히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아이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또 함께 경험을 만들어나가면서 '맥락 있는' 대화를 해나가고, 놀이도 책을 통해 영감을 얻어 확장해 나가는 등 무엇이 진짜 책을 통한 경험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결국 책이 인생에 어떻게 흡수되는지 그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냥 책을 많이 읽혀야지! 이렇게 생각해서 아이의 삶과 파편적으로 분리되는 책 읽기가 아니라, 아이의 삶의 맥락 속에 책이 위치 지어지고, 또 책이 삶의 맥락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는, 그런 독서와 경험을 만들라는 이야기이다.
멀리 보면 중요한 것은 글자를 얼마나 빨리 읽어내느냐가 아니라 책 읽기를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며, 그로 인해 얼마나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며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것이 학원이어도 좋고 학교여도 좋지만 아이가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책 한 권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며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다면 아이는 지성뿐 아니라 감성이란 정서를 채우며 인생이란 긴 여정을 따스함 속에서 출발할 것이다.
책육아에서 책은 수단일 뿐이다.
이 책에서와 같이 '결과가 증명되지 않더라도' 나는 어쨌든 책을 통해 아기와 경험을 나누고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