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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an 10. 2024

힘들게 얻은 아기인데

진짜 사랑엔 양가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난임병원에 2년간 다니며, 1번의 화학적 유산도 겪고 어렵게 갖게 된 아기였다. 병원에 다닐 동안은 '아기만 생기면 진짜 잘해줄 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막 힘들다고 하지 않아야지. 힘들어도 다 이겨내야지. 아기만 생기면...'이런 식의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어렵게 가진 아기기 때문에 내 나름 준비는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아기를 원하는지, 아기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도 감안할 것인지에 대해 하루 3번 배에 주사를 놓으며 지겹도록 고민했다.  


여러 임신, 출산, 육아 서적들을 읽으면서 내 나름 시뮬레이션을 했다. 안 좋은 상황도 상상해 봤다. 그래서 '임신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라거나 '이렇게 변하는 걸 왜 아무도 말 안 해줬어요?'라는 식의 이야기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요새 널리고 널린 게 임출육 이야기인데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다는 거지? 모두가 다 아기 낳기 힘들고 아기 키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지상파에서도 맨날 그 이야기고 육아 서적도 다 힘들다는 얘기더만. 왜 그걸 찾아보지도 않았지? 왜 자신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생각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 저런 문구가 어느 정도 후킹문구로서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콘텐츠의 제목임을 앎에도,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뼛속까지 T스럽게 생각했었던 나였고 힘든 걸 알고 뛰어든 필드이니 아기만 생기면 힘들어도 씩씩하게 육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임신 기간은 나름 견딜만했다. 아기가 건강한 덕분이었다. 나도 막달까지 건강하게 회사를 다니다 출산 예정일 3주 전부터 휴직에 들어갔다.


그다지 큰 이벤트가 없었던 임산부 시절. 그래서 안온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청난 행운이었던듯.




문제는 출산과 육아는 '알아도'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준비해도, 아무리 머리로는 알아도, 아무리 힘들게 얻은 아기여도 힘겨운 순간들은 찾아왔다.


출산부터 그랬다. 아기는 출산예정일 일주일이 지나도 내려올 생각을 안 했고 양수가 먼저 터져서 1박 2일 동안 출산을 했다. 자연분만을 하면서 계속 든 생각은 '수술할 걸'이라는 생각뿐이었고 씩씩함은 점점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어찌어찌 출산까지 마쳤는데, 산후조리원에서 나는 거의 매일 울면서 지내게 된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아기와 나 혼자 작은 방에서 지내면서 '아 진짜 이제 내가 이 갓난아기를 책임져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야 아기가 울면 신생아실에 전화를 해서 아기를 데려가 달라고도 하고, 혹은 같이 보기도 하고, 아기를 맡기고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2주간의 유예 기간이 지나면 매일 나 홀로 아기를 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양가 부모님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남편도 회사와 대학원을 병행하느라 주 3일은 밤 10시 30분에 집에 오던 시절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야 미친듯한 불안함에 잠이 오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그때 잠이나 실컷 잘 걸 싶지만. 그때는 '여길 나가면 난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유튜브에서 '조리원 퇴소날 할 일', '신생아 돌보는 법' 같은 영상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있었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다른 집 아기들만 우르르 나왔고 아기를 돌보는 일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아무리 방법론적인 학습을 열심히 하려고 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틀어 내 불안함의 근원을 짚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리원에서 밤을 새워 책을 읽는 기행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이 차려준 밥 먹으면서 잠이나 실컷 잘걸..ㅠ




그때 밤을 새우면서 읽은 책들은 박우란 선생님의 책이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아기인데, 아기를 낳자마자 이토록 불안함을 느끼고 괴로운지 근원적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호르몬의 농간' 같은 이야기 말고 말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99%는 호르몬의 농간이 맞다..) 힘든 건 다 알았고, 그토록 원했던 힘듦인데 왜 이러지?


그때 박우란 선생님의 '여자의 심리코드',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제목이 좀 센데 제목에 끌린 것은 아니고 박우란 선생님의 여자의 심리코드를 읽고 도움이 되어 다른 저서를 읽느라 고른 책이다 ㅎㅎ)를 정독했다. 이 책을 읽고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YES다.




박우란 선생님의 철학과 책들이 프로이트의 사상을 기반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라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서도 밝히듯 프로이트의 사상이 나르시시스적 남근중심 사상이라고 비판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론과 박우란 선생님의 임상 경험이 합쳐서 나름 나에게는 도움이 됐던 책이다. '여자의 심리코드'는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보다 조금 더 이론적인 내용들이 있어서, '남편~'책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서 내가 위로를 받은 부분 중 대표적인 것은

인간이라면 어떠한 존재에게, 또한 그 존재에게 몰입을 하면 더더욱 '양가감정'을 느끼게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이것만 알아도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남편과 사이가 소원해 상담을 받고 싶다는 여자가 있었는데, 막상 선생님이 남편과 만나려 하자 망설인다. 남편은 오히려 상담을 받겠다고 나섰는데도 말이다.


사실 그녀는 남편과 자신의 거리와 고통스러운 긴장감 안에서 홀로 슬픔과 외로움을 즐기고 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편과 자신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멀어진 사이가 좁혀지는 것을, 자신의 무의식이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지요.

의식적으로는 관계 개선으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정말 관계를 회복할지도 모를 순간, 무의식의 깨달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던 삶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양가감정을 지적한다. 매일 갈등뿐인 부부의 무의식 속에서 사실은 이런 스릴을 즐기고 있는 심리라든지, 매일 아내의 술 먹지 말라는 잔소리 덕에(?) 술이 더 달게 느껴지는 남자의 심리라든지.


나 역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아기를 너무나 잘 키우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너무나 부담이 되었다. 힘들게 얻은 아기라 너무나 소중한 나머지, 이 아기가 만약에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중압감이 더 컸던 것이다. 너무나 소중하기에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내 안에 자리 잡은 회피성 성향이 꾸물꾸물 나오고 있었고, 그러나 아기를 키우는 일에 회피란 없기에 밤새 괴로웠던 것이다.


나의 이 이중적인 감정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이 이런 이중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박우란 선생님도 자신이 수녀였다가 수도원에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제 이상적 사랑에 대한 환상이 몰락한 순간이고 좌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관계는 그 몰락 이후부터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정신 분석에 매진하면서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참으로 미약한 소년과 소녀들이 감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약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뼈아픈 사실도 겪어야 했습니다.



나는 미약하다. 왜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준비됐고 힘들지 않은 육아를 할 것이라 자신했을까. 그것을 받아들이니 한결 편했다.


나 역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를 줄 알았던, 그저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또, 진짜 관계는 몰락 이후부터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들은 항상 이랬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엄마를 보면서 사랑하는 엄마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나라면 교회에 저렇게 시간을 쓰고 돈을 쓰기보다 가족에게 더 시간을 쓸 텐데'라는 생각부터, 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기승전 기도'로 끝나는 대화로 인해 엄마가 진짜 나를 생각하기나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냥 기승전 기도라는 엄마의 결론을 위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껴왔던 것이었다.


남편과의 관계 역시 말해 무엇하랴. 남편에게 깨끗하게 사랑의 감정만 느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본다. 사랑하면서도 그가 내가 원하는 걸 더 알아서 잘해줬으면 하는 감정. 그에게 내 인생을 더 기대고 싶지만 동시에 그에게 종속되기도 싫은 감정 등.


아기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고 소중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럽고, 매일 육아를 하면서 나의 한계가 다다를 만큼 힘든 것도.


소중한 사람, 즉 '진짜 사랑'이라면 이중, 삼중의 양가감정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양가감정이 들지 않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이것을 깨닫고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남은 며칠을 아주 말끔하게 푹 쉬다가 퇴소했다.


조리원 퇴소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 조리원 빠이


p.s. 육아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해놓고 거의 처음부터 육아서가 아닌 정신분석책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나의 ‘내면 아이’를 키운 책이기에... 이것도 육아서가 맞다고 우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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