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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an 03. 2024

나도 오타니가 아닌데

완벽한 육아에 대한 강박은 내려놓자 

아기가 태어나고 보니 백화점에 자주 가게 된다. 아기가 없을 때는 골목골목에 숨어져 있는 맛집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4층에 위치한 간판 없는 카페들도 많이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가지 못한다. 춥거나 덥지 않고, 유모차를 끌 수 있도록 평지여야 하며, 수유실과 기저귀 갈이대가 있어야 하고, 식당에는 아기 의자가 있어야 하니 백화점이나 대형 몰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날씨라도 좋은 날이면 테라스가 있는 카페도 좋은 선택지지만 지금 같은 겨울엔 영락없이 대형몰 이곳저곳에 갈 수밖에 없다. 


많은 아가 부모들의 생각이 거의 비슷하다 보니, 백화점이나 대형몰은 마치 거대한 키즈 카페 같다. 특히 수유실(유아 휴게실)이 있는 층과 식당가는 특히 더 키즈 카페 같다. 


대형몰이나 백화점에서 아기와 함께 온 부모들을 관찰하다 보면 어찌나 다들 부지런해 보이는지. 유모차도 깨끗해 보이고, 유모차에 달려있는 각종 기저귀 가방이나 컵홀더, 방한 용품들도 모두 잘 갖춰져 있는 듯하다. 아기들도 다 깨끗하고 머리도 귀엽게 잘라져 있고, 옷들도 대부분 최신 유행하는 옷들-그것도 당근에서 산 것이 아닌, 새것 같아 보이는-을 입고 있다. 턱받이며 양말이며 어찌나 다 센스 있게 매치했는지. 




실제로 통계를 살펴보면 저출생이지만, 아니 저출생이니깐 아기 명품 시장은 급성장했다. 

아이가 한 명이니 더 투자하고 더 정성스레 키우는 것일 테다. 


한국섬유산업협회에 따르면 아동복 시장 규모는 △2020년 9,120억 원 △2021년 1조 1,247억 원 △2022년 1조 2,016억 원(잠정)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 백화점 3사의 아동 카테고리 매출과 이 중 해외(명품) 아동 카테고리 매출을 비교해 보면 지난해 3사 모두 아동 카테고리 매출이 전년 대비 20%대(현대 26.4%·신세계 20.8%·롯데 20%) 오른 반면 해외 명품 아동 브랜드 매출은 전년 대비 최대 55%(롯데) 더 올랐다. 신세계백화점은 1분기 아동 매출 전체가 13.7% 오를 때 해외 아동 카테고리는 22.7%가 올랐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50810180000982?did=NA


백화점이나 대형몰에서 뿐일까. SNS를 켜도 이러한 완벽한 육아에 대한 강박은 커진다. 신생아부터 시작한다는 책육아, 영어 노출은 물론이고 자연주의 출산부터 시작해서 수면 교육 컨설팅, 3살까지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가정 보육하는 것이 좋다는 소아과 의사들의 조언, 아이 훈육에 대한 시시각각 조언을 보다 보면 한 순간이라도 육아에 대한 강박을 놓치기 어렵다. 


SNS에는 12개월만 되어도 혼자 양치질을 하는 아이, 일주일에 1번 30분씩 집에 방문해 촉감놀이를 해주는 교육 활동을 3~4개씩 하는 아기 등등을 쉽게 만나볼 수 있어 '내가 이렇게 키워도 되는 건가' 싶어 진다. 




이 강박은 거의 생애 주기에 따라 발전하며 반복된다. 꽤 오래전 책이지만, 신의진 소아과 의사가 쓴 책 '아이의 인생은 초등학교에 달려있다'(이 제목 또한 뭔가 강박을 주는 것 같지만;;)는 이렇게 시작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자에 앉아 40분 동안 꼼짝도 않고 집중하기를 바라고, 어른들 말에 고분고분 따르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숨 돌릴 틈도 없이 시간 맞춰 학원에 가기를 바란다. 책도 좋아해야 하고, 친구도 잘 사귀어야 하고, 그림 그리기는 기본이며,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하고, 태권도나 수영쯤은 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우리 초등학생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노릇인가. 아마 웬만한 어른들도 그걸 다 해내려면 힘들 것이다. 어른들도 하기 힘든 것을 아이에게 같은 강도로 요구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버거워하는 건 당연하다.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75715


이걸 우리 아기 연령인 영아에 대입해 보면, 아이가 분유를 먹으면서 자지 않기를 바란다, 자다가 깨서도 분유를 안 찾고 다시 잘 자기를 바란다, 밤 8시에 자서 아침 7시에 통잠을 자기를 바란다, 각종 야채를 다진 이유식을 80~150g씩 꼬박꼬박 잘 먹고 분유는 500g~600g 먹기를 바란다, 찡얼 대지 않고 15분 정도는 혼자 책을 만지작 거리면서 놀기를 바란다, 낮잠도 12시에 1시간 3시에 1시간 규칙적으로 자기를 바란다 등... 


지금 내가 아기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완벽하게 실행하게 만들기란 어렵다. 그리고 영아의 특성상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내가 아기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건가? 버릇을 잘못 들였나? 인스타그램 보면 다들 잘하던데... 수면 컨설팅을 받아봐야 하나?'라는 식의 생각으로 빠지기 쉽다. 


그도 그런 것이 나 역시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 않나. 마치 아기에게 내가 읽은 육아 정보의 '총합' 그대로 크기로 크기를 바라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오타니가 되라고, 왜 넌 오타니가 못 되냐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트위터에서 돌아다니는 말로 누군가 오타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타니는 보고 있으면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무슨 파시즘 국가에서 내놓은 이념형 모델링 같음. 육체의 미학+강력한 공적 가치관+사적 생활의 사실상 소거+ 어마어마한 대중 동원력+기성 기득권에 대항하는 아시안 포지션. 사람들이 빠지는 이유가 있음. 
드라마 대사인줄..


물론 내가 오타니가 아니니까~ 하고 하면서 아이를 그냥 아무렇게나 막 키워도 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 역시 어쩌면 아이를 방치하는 나의 모습을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기준을 세우고 그에 충족했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되다는, 아니 완벽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내 경우에는 일과 중 육아에 집중하는 시간을 두고, 틈틈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 - 대부분 글쓰기- 를 껴넣었다. 예를들어 아기가 일어나는 오전 8시부터 10시 정도까지는 아기 밥 먹이고, 이유식 챙기고, 씻기고, 어느정도 놀아준 다음 20분~30분 정도는 조금 찡찡대고 혼자 놀게 놔둔다. 이런 식으로 2시간 30분을 하나의 텀으로 두고 2시간 동안은 집안일과 육아, 30분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이 20분~30분밖에 안되기에 그 시간에 핸드폰으로 그저 숏폼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20~30분 정도는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허용하는 식이다. 아기와 내가 같이 놀 때는 최대한 전자 장난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원목 교구나 책을 읽어주거나 몸으로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꼭 나와 비슷한 기준을 둘 필요는 없지만 어쨋든 육아를 하면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지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거의 모든 육아서에서도 이러한 기준들이 제시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읽는 재미도 있다. 


앞서 인용한 신의진의 책에서 나온 기준은 이렇다. 

(초등학생 때) 아이가 꼭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당신은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할 한 가지는 바로 '세상을 좋아하게 만들기'다. 그 세상은 친구와 가족, 선생님은 물론 공부까지 아우른 세상이다.

'아, 세상은 참 재미있고 좋은 곳이구나'를 느낀 아이와 '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고 재미없지'를 느낀 아이는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 세상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힘든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이 할 일을 개척해 나간다. 


어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회사 일이 힘들어도 월급날 느끼는 잠깐의 쾌락, 혹은 그것으로 즐길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근사한 저녁 시간. 회사 일이 지겨워도 가끔 받는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올라가는 자존감, 존경할 만한 동료나 인터뷰 대상과의 대화. 집안일이 지겨워도 깨끗해진 집안을 보며 커피 한 잔을 할 때의 즐거움. 새로 산 토스터기에서 꺼낸 따끈한 토스트가 주는 기쁨. 남편과 함께 오래된 카펜터스 노래를 흥얼거리며 느끼는 돈독함 등. 


세상엔 자잘하고 큰 기쁨과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는 걸 알기에 힘든 순간들을 견디는 것이니까. 




이 연재는 모든 것을 책으로 해결하려는 책 의존자의, 육아서를 읽으면서 느낀 어른의 성장감에 대해 쓰려고 한다. 육아서를 읽으며 인간의 뇌 발달과 심리, 아이에게 어떻게 대할지를 배운 것과 함께 나를 어떻게 경영할지 배운 것도 많기에.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키운다'는 평범한 말이 진짜로 와닿고 있기에. 


아기를 다루는 법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성장하는지, 관계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인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 켜켜하게 쌓인 고민들에 해답을 준 육아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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