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저출생(산) 시대가 지속되면서 이전에는 '왜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해요?'라는 질문을 했다면 이제는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해요?'라는 질문으로 바뀐 것 같다. 사실 출산 혹은 비출산에 대한 질문과 글은 너무나 예민하고 잘못하다간 누군갈 공격하는 것 같은 글이 되기 십상이기에 글쓰기가 쉽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30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이제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결혼과 비혼, 출산과 비출산, 냉동난자, 입양까지 번지게 됐다. 그러다 보면 난임 시술을 2년 동안이나 시행한 후 임신 중인 나에게 "왜 아이를 낳고 싶느냐?"는 질문이 꼭 한 번은 나오게 된다.
나는 왜 아이를 낳으려 했을까. 아이를 낳겠다고 처음 결심한 때를 정확히 기억할 순 없다. 결혼을 하고 3년이 지난 2021년 초 나는 난임 병원을 찾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찌 보면 '아이를 꼭 낳아야지'라는 결심의 상태라기보다 '왜 아이가 안 생길까?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정도의 마음이었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나나 남편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못 낳는 것과 안 낳는 것은 다르니까. 두 사람 모두에게 큰 문제가 발견된 것은 아니었고 현대인이라면 겪는 정도의 문제를 지적당했다.
큰 문제가 없다는 답을 받아서인지 이미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바로 난임 시술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은 서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자연임신을 위한 배란주기법을 먼저 권했고 배란이 다가오기 전 한 달에 1~2번 정도 병원에 가서 배란일을 체크하기 위해서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결과적으로 자연 주기법은 실패했다. 그렇게 2021년 상반기가 지나갔다.
2021년 하반기는 인공수정에 도전했다. 인공수정은 자연임신이 되지 않는 부부에게 시험관 시술보다 이전에 권해지는 방법이었다. 시험관 시술보다 비용이 훨씬 적고 여성의 몸에 부담도 덜했으며 시술방법도 간단했다. 인공수정은 한 번에 20만 원 정도의 시술비가 들었다. (이후 시행한 시험관 시술은 200만 원 정도가 든다.) 배란일에 맞춰 정자를 추출하고, 그것을 병원에서 여성의 몸에 시술하는 방식이다. 수정이 잘되라는 약 정도는 먹고, 부담되는 시술이 아니니 마음도 편했다. 인공수정은 4번 정도를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4번의 인공수정은 모두 실패했다. 단 한 번의 성공적인 시그널도 없었다. 그렇게 2021년 하반기도 보냈다. 이때까지는 큰 고통도 없었고 정신적인 번뇌도 없었다.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 부담스럽지 않은 시술 과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난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라며 혼자 합리화를 했었던 것 같다.
시험관 시술을 결심하기까지는 이로부터 몇 달이 걸렸다. 2022년 늦은 봄이 되어서야 시험관 시술을 결심했다. 시험관 시술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우선 난자를 과배란 하는 과정(성인 여성은 1달에 1개의 난자를 배출하는데, 과배란을 위해서 1달에 20개 정도의 난자를 만들게 한다.)에서 매일 주사를 3개씩 시간에 맞춰 맞아야 한다. 회사 화장실에서 주사를 놓을 때 괜히 드라마 속 우울한 등장인물이 떠올랐다. 게다가 난자채취날이 다가올수록 많아진 난자 때문에 뱃속은 부글부글하고 빵빵해진다.
‘난자 채취’ 이것 역시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우선 수면 마취를 했다. 마취 자체가 무서운 일이다. 한 달 동안 키운 난자들을 주사 바늘을 넣고 채취한다. 수면 마취됐기에 내 몸에 무슨 과정이 거쳐갔는지 모르겠지만 수면 마취 이후에 깨어나서도 복부 부근이 찌르는 증상이 하루 이상 간다. 난임 치료 가운데 가장 힘든 날 중 하루였다.
내 경우 한 달 동안 16개의 난자를 만들었다. 이것들을 모두 얼려놓는다고 해서 다 몸에 넣을 수 있는 수정란이 되는 것이 아니다. 16개의 난자 가운데 수정이 가능한 것은 4개였고 가장 좋은 상태는 2개였다. 10~20개를 뽑아도 막상 몸속에 넣을 수 있는 수정란은 5개 미만이었다. 내 주변에서는 저 어려운 과배란과 난자채취를 다 하고도 아기로 만들 수정란이 안 만들어져서 또 이 과정을 반복한 사람도 있었다.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이 실패했을 때 '난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현타가 왔다. 두 번째 시술은 이미 만들어 놓은 수정란을 넣기만 하면 돼서 첫 번째 시도처럼 큰 부담은 없었다. 그래도 두 번째 시도를 앞두고 '내가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난임시술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무섭거나 힘들 때마다 그래도 마음껏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에 대해 생각했었다. 내 성격상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고, 계산적이게 되고, 망설인다. 많은 이들이 사랑 앞에서 그럴 것이다.
이렇게 사랑 앞에 계산적이고 소심한 나여도, 나의 아기에게는 그런 계산이 없이 마음껏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또한 그 사랑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이성과의 사랑이나 다른 관계에서 느낀 사랑보다 이상적일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어쩌면 나는 사랑 앞에서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줄 수 있는 사랑은 더 큰데.' 그런데 아직까지는 뭔가 내 이성과 소심하고 계산적인 기질로 인해 자꾸 주저했었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했다.
결론적으로 ‘이런 나도 내 아기에게는 따듯한 엄마이겠지’ 같은 마음이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랑보다 더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고픈 맘. 물론 이 사랑을 나누고 싶은 아이의 의사는 물어보지는 못해서 매우 이기적인 결정일 수밖에 없긴 하다.
"왜 아기를 낳으려고 해요?"라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결국 "새로운 유형의 사랑을 만나기 위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랑으로 인한 나의 변화와 좌절, 절망까지 곁들인 성장을 할 나날을 원하기 때문이다.